
6월의 파리는 10시가 넘도록 환해서 연기를 배우러 런던으로 유학을 다녀왔다던 그녀와 손을 잡고 자정까지 파리 밤거리를 걸었다. 넌 어디서 뭘 하고 있니. 그녀는 그 순간을 자신이 연출하게 될 연극에 쓸 것이라며 내가 찍은 이 영상을 꼭 자신에게 보내달라고 했다. 이유는 몰라도 나의 얼굴을 잘 담아두어야겠다며 내 얼굴에다 카메라를 대고 이리저리 찍어대었다.
축축한 밤거리, 축축한 베갯잎에도 낭만은 푸릇하게 살아있었다. 마레지구의 코스에서 산 하얀색 블레이저에 반바지를 입고 미술관들을 들락날락하며 전 학기 프랑스의 문화산업 수업에서 배웠던 그림과 건축과 디자인을 따라 걸었다. 논문으로 쓴 케브랑리 박물관에 가서는 초고 아래 적어내었던 키워드들, 가령 필로티 양식이나 식물 벽, 아시아 미술과 같은 것들을 떠올렸다. 닿는 발자국마다 조주은 선생님, 박성혜 선생님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그럼 마음이 벅차서 눈에 눈물이 맺혔다.
파리 첫 날에는 라 데팡스에서부터 샹젤리제를 지나 개선문 그리고 마레까지 삼만보를 걸어냈다. 차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서는 볼 수 없는 것들을 보았다. 길가에서 파는 호두정과,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줄을 선 바게트 샌드위치 가게, 노란 옷을 입고 투르 드 프랑스를 달리는 아저씨 무리. 파리는 걷기가 좋았다. 도로는 좁고 인도는 넓었다. 아마 엘에이에서 살지는 못하겠지 생각했다. 걸으니 도시가 한 눈에 들어왔다. 첫날엔 그랑팔레와 프티팔레를 지나 튈르리로 내려왔고 둘째날엔 앵발리드를 지나 알렉상드르 3세 다리를 건넜다. 다리 맞은 편에 그랑팔레가 보였다. 그렇게 머릿속에 지도가 그려졌다. 맛있는 에클레어 집은 소품가게 맞은 편에 있었고 거기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코스가 있고 그 뒷편으로 로댕 미술관이 있는 식이었다.
니스에서도 걸었다. 길을 걸으면 무화과 향이 났다. 숙소에서 내려와 광장을 지나 해변으로 나와 약간의 언덕을 오르내려 선착장까지 갔다. 바다 옆에선 약간의 짠내음과 달큰한 무화과 향이 섞여 오묘한 느낌이 들었다. 걷는 내내 조빔의 보사노바를 들었다.
유럽에선 걷지 못할 곳이 없었다. 암스테르담, 마스트릭트, 베를린, 뒤셀도르프, 예테보리, 코펜하겐, 오슬로, 상트페테르부르크, 리가. 도시의 맛은 걷는데에 있다. 걷지 않으면 도시를 알지 못한다.

2017년에 이어 2년 만에 찾은 뒤셀도르프에서는 어디에 뭐가 있었는지 전부 기억할 수 있었다. k20으로 가는 길에 있던 샐러드 가게마저 정확하게 찾아냈다. 난 아직도 그 기억이 열심히 걸어다닌 것에 의 결과라 믿는다.
난생 처음 듣는 노래를 듣다가 예테보리 생각이 났다. 새로 지어진 아파트 단지 뒷편으로 난 숲길을 걸어가다보면 커다란 호수가 나왔다. 그 호수에서 혜원과 다이빙을 하고 둥둥 떠다니다가 잠수를 하고 그랬다. 수영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 저녁 여덟시, 노랗게 저물듯한 해를 뒤로 맞으며 걸어갔던 기억. 슈퍼에 들러 그 전날 카페에서 만나 같이 놀던 남자애들의 집에 가져갈 요리를 위한 재료를 샀다. 그 때 공기가 어땠던가. 가끔 길을 걷다가 코에 훅 들어오는 공기가 익숙할 때가 있다. 언젠가 그 공기를 다시 기억해낼 날이 오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