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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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고린도전서 13:4-8

에스더는 교회에 가지 않은 지 오래 되었지만 여전히 최 목사님이 설교 시간에 읽어 주었던 고린도전서 13장 4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은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에스더가 신실한 신자였던 시기는 여섯 살때부터 열여섯 살 때까지였다. 최목사가 고린도전서 13장 4절부터 8절까지를 읽으며 설교하던 것은 에스더가 열네 살 때의 일이다. 나이가 지긋한 최 목사는 사랑하는 이를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덕목에 대해서 논했었다. 그래야 주님께서 전하시는 사랑의 말씀을 지킬 수가 있다고 말이다.

그녀는 고린도전서에서 말하는 ‘사랑은 오래 참고’ 라는 구절에 특히나 공감했다. 어디에나 에스더의 인내심을 매번 시험하는 이들이 있었다. 에스더가 짝사랑했던 민재는 툭하면 반에서, 아니 전교에서 가장 예쁜 유진이와 에스더의 외모를 비교하곤 했다.

“아니, 키는 에스더가 더 큰데 머리가 커서 그런지 유진이랑 비율이 똑같아”

“피부가 진짜 까맣네. 방글라데시 사람 같다. 유진이는 하얗던데”

“유진이가 에스더 눈 크기의 두배야.”

민재가 종종 던지는 비하적인 말에 에스더는 짝사랑을 접었지만 그의 말은 계속 그녀를 따라다녔다. 에스더는 유진과 친해지지 않았더라면 이런 수모를 겪을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자주 생각했다. 에스더는 학교에서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집에 오면 자기 전까지 거울을 들여다보며 예쁘지 않은 자신의 외모를 힐난했다. 그리고 자기 전에는 침대에 경건히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아무리 응답이 되돌아오지 않아도 인내하고 또 인내하며 기도했다.

에스더의 기도 주제는 한번도 달라진 적이 없었다. 그녀는 아름다워지고 싶었고 자신의 못난 외모가 늘 불만이었다. 따라서 자기 전마다 예쁜 외모와 날씬한 몸매를 달라고 기도하곤 했다. 기도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 아버지, 왜 저를 이렇게 피부도 까맣고 온 몸에 털이 가득한 여자애로 태어나게 하셨나요? 저도 새하얀 피부에 매끈한 팔다리를 가지고 싶단 말이예요···남자애도 아니고 팔다리에 털이 지나치게 많아서 속상합니다. 어제는 아기 오랑우탄 같다는 소리까지 들어서 슬픕니다. 하늘에서 다 지켜 보셨겠지요. 제발 예뻐지게 해주세요. 쌍커풀 없이도 커다란 눈과 오똑한 콧날을 갖고 싶습니다. 제가 기도를 통해서 예뻐지게 된다면 세계 각지를 다니면서 기도에 응답하셨다고 열심히 간증하겠습니다. 아멘”

하지만 열일곱 살, 고등학교 입학 전 겨울까지도 쌍커풀 없이 커다란 눈과 오똑한 콧날은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에스더는 몹시 추웠던 일월의 어느 날 쌍커풀 수술을 통해서 커다란 눈을 갖기로 결심하고 수술을 감행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했다. 여섯 살 때부터 열일곱이 되기 전까지 매주 일요일이면 꼬박꼬박 교회에 나갔고 교회에 오는 아기들도 열심히 놀아줬다. 헌금을 안하면 기도에 응답 안 하실까 걱정이 되어 헌금도 빼놓지 않았다. 예배 시간에 졸지도 않았고 찬송가는 진심을 다해 불렀다. 다른 우상은 안 섬기고 하나님만 바라봤는데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지? 못난이의 늪에서 자신을 꺼내줄 수 있는 이가 하나님이 아니라 성형외과 의사라는 걸 인정한 에스더는 그 길로 교회에 발길을 끊었다.

수술 후 반 년이 경과하고 에스더는 진작 성형외과에 갈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살면서 외모 칭찬을 들어본 적이 있었나? 지난 육 개월 간 에스더는 예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게다가 살이 빠지면서 몸무게가 45kg가 되자 반 여자애들은 날씬해서 좋겠다며 그녀를 부러워했다. 지난 주에 안과 진료를 보러 갔을 때에는 젊은 안과 의사가 그녀에게 눈이 참 예쁘다고 칭찬을 건넸다. 아직까지 에스더가 쌍커풀 수술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사람이 없었다. 안과 의사가 인정한 내 쌍커풀···뿌듯했다. 누군가 자신을 부러워하고 인정하는 감각은 몹시도 달콤한 것이었다. 예뻐진다는 건 좋은 일이 틀림없었다. 쌍커풀이 생기고 나서야 비로소 사랑을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제 유진이가 전만큼 부럽지는 않았다. 하지만 성형을 했어도 유진이보다 자신이 덜 예쁘다는 사실은 가끔씩 에스더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타고난 걸 이기는 게 원래 이토록 어려운 일인지 고민하다 보면 서글퍼졌다. 여자가 예쁘면 고시 삼관왕이나 마찬가지라는 말이 통하던 시절이었다. 에스더는 자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예쁜 유진이보다 나은 인생을 살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전국 각지의 수많은 유진이들이 자기보다 앞서 갈 생각을 하면 비명을 지르고 싶었다. 그럴 때는 정말이지 사는 게 지긋지긋했다.

에스더와 유진은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가끔씩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유진은 그 사실을 몹시도 아쉬워하면서 매일 같이 전화를 걸었다. 에스더도 예쁘고 유머 감각도 있는 유진이와 노는 게 재밌었지만 고등학교는 각자 다른 곳으로 진학하기를 바라고 있었기에 별로 아쉽지가 않았다. 비교 당하는 일이 지겨웠기 때문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로 종종 고린도전서 13장 4절부터 8절까지를 곱씹다 보면 특히 그랬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린도전서의 그 말씀은 누군가에게 먼저 사랑을 건네지 않으면 결코 사랑받을 수 없는 자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유진이처럼 태어날 때부터 예뻐서 사랑받는 게 익숙한 부류의 애들은 굳이 오래 참고 온유하고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다. 유진이만 해도 자기 맘에 안 드는 여자 후배들을 자주 괴롭히고 청소하기 싫으면 자기랑 친해지고 싶어하는 애들한테 떠넘기고 못생긴 남학생이 고백하면 망신을 주곤 했는데도 사랑받았으니까. 그런 생각들이 떠오르면 유진이가 재수없게 느껴졌다.

에스더의 책꽂이에는 <잘 읽지 않지만 버릴 수 없는 책> 구역이 존재했다. 가끔씩 그 구역에서 성경을 꺼내 보았다. 철쭉 색깔의 작은 성경책은 최 목사의 사모님이 선물로 주신 것이었다. 상냥한 사모를 몹시 따랐던 에스더는 더 이상 믿음이 없는데도 그 책을 버리지 못했다.

오늘처럼 유난히 잠이 오지 않는 밤에는 성경을 꺼내는 것이 버릇이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그녀는 익숙하게 고린도전서 13장을 펼친다. 그리고 검지손가락으로 하나하나 구절을 짚어가며 눈으로 읽는다. 어느 순간부터 에스더에게 4절부터 8절까지의 말씀은 두려운 것이 되었다.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사랑받을 수 없는 자들에 대한 위로처럼 느껴졌고 그 사랑받을 수 없는 자가 에스더 자신이라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떤 예감은 왜 이토록 선명한지, 그 선명함에 짓눌린 그녀는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고 눈을 감았다.

철쭉색 성경이 침대 밑으로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