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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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도, 제철소

작가가 언니의 방에서 들었던 노래, 함께 봤던 영화, 책장에서 발견했던 낯선 책들을 나열하며 언니의 세계를 이어받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는 내 동생에 대해 생각했다. 나는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남자 유튜버의 영상을 챙겨보고 꾸밈 노동 산업에 종사하고 스스로도 남들에게 보여지는 모습을 중요하게 여기는 내 동생은 침대에 누워 책을 읽고 27인치 모니터로는 블로그에 글을 쓰고 머리를 짧게 잘라 화장도 하지 않는 나를 어떻게 이해할까. 작다면 작은 나의 세계에 걔도 영향을 받고 있는지 궁금하다. 언젠가는 동생과 여성으로서 이 나라에 사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언니.

나는 언니가 없다. 생물학적 언니가 없다는 말이다. 엄마도 장녀, 아빠도 장남이라 그 사이에 태어난 나는 엄마쪽 아빠쪽 모두를 통틀어 장손이자 첫 조카가 되었다. 그 이후로 줄줄이 태어난 열 명이 넘는 사촌 동생들에게 나는 언니이기도, 누나이기도, 이모이기도 했다.

나의 첫 언니는 아마 넷째 이모였던 것 같다. 이모이기는 하지만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아 언니처럼 따랐다. 너다섯 살 때 할머니 집 3층의 전자 피아노로 이모는 내게 젓가락 행진곡 치는 법을 알려주었다. 어둑하고 쾌쾌한 3층에서 십 여 분을 피아노를 치다가 밥 먹으러 내려오라는 할머니의 부름에 3층 문을 닫고 계단을 내려오던 기억이 있다. 나는 유독 넷째 이모를 좋아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이모의 성격이 나와 가장 비슷한 것 같다. 씩씩하고 강한 제주도 여성 밑에서 자란 불같은 여섯 딸 중 가장 조용하고 내성적이고 온화한 성격의 이모가 넷째 이모였다. 책을 많이 읽어 똑똑하고 동생들의 싸움에 구태여 말을 얹지 않고 왁자지껄한 거실 한 가운데서도 혼자 구석에 앉아 가족의 모습을 관전했던 이모를 생각해보면 지금 내 모습과 아주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어려서도 가장 잘 따랐고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이모다.

언니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사는 작가와는 다르게 나는 알고 지내는 언니들이 한 손에 꼽을 정도이다. 언니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쌓아야 하는지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중고등학교 동아리에서도 언니들과는 유독 어색했고 내가 언니 노릇을 하는 게 훨씬 편했다. 동생들과는 몇 년씩도 인연을 이어나가기도 했지만 언니들과는 한 학기를 같이 지내기도 어려웠다. 지금 친하게 지내는 언니들과는 거의 친구처럼 지낸다. 언니 노릇을 하려는 언니들과는 잘 안맞나 싶다. 그런 점에서는 작가가 그려낸 관계맺음에 공감하기 어려웠지만 그런걸 다 떠나서 한껏 기댈 언니들이 있는 작가가 좀 많이 부럽기도 했다.

어린 시절의 나는 언니가 하는 모든 행동을 귀감으로 삼았다. 언니가 하는 건 뭐든 멋져보이고 부럽고 어떻게든 따라하고 싶었다. 음악이 끊이지 않았던 언니의 방에서 듣게 된 인디 가수의 노래, 영화에도 관심이 많던 언니와 함께 본 수백 편의 고전 영화, 발음하기도 힘든 외국 작가의 이름이 빼곡했던 언니의 책장.

p. 107

p. 135

달나라도 가는 세상이지만 여자 목숨 구하는 데에는 뜨뜻미지근한, 가려진 죽음이 이토록 많다니. 언니는 이미 죽었으므로, 제왕절개 수술 자국이 제대로 마감되어 있지 않았다. 낡아서 헤진 이불을 기운 듯 대충 봉합한 칼자국이 분명한 몸을 보며 사무치게 서글펐다. 아이를 낳았으니 제 몫을 다했다는 것일까. 한없이 적막한 안치실. 향조차 비우지 못할 정도로 얼어붙은 곳.

구멍이 숭숭 난 스펀지처럼 균열 많은 내 인생에, 그렇게 언니들은 말없이 다가와 그 틈을 메워주었다. 나는 수많은 언니들에게 목숨을 빚졌따. 진작 무너졌을 모래성 같은 생이 지금껏 유지된 것은 오롯이 언니들 덕분이다. 필사적인 용기를 내어준 여성들 덕분이다. 그리고 그게 내가 가진 유일한 운이다. 아주 운수대통이다.

p. 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