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7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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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지 않고 이성이 아닌 본능으로 행동하기 시작할 때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낀다. 요 몇 주간 그랬다. 생리탓을 했는데 생리를 하지 않는다. 해피문에 알람이 뜬다. 월경 예고일이 지났는데 기록을 잊어버리셨나요? 그럼 그렇지. 내 생리는 늘 열흘쯤 늦는다. 그러니 이번 한 달의 절반은 이렇게 보내버릴테다. 먹는 것도 운동도 모 아니면 도다. 매일같이 두 세시간을 운동하거나 혹은 아예하지 않거나 하루에 한 끼만 먹거나 혹은 폭식을 한다. 사실 이렇게 될 일도 아니었는데 다리를 다쳐서 운동을 못하게 됐고 8주간 배우던 발레도 이제 마지막 수업을 앞두고 월반을 할 참이었으나 못 가게 되었다. 다리가 회복될 때 쯤이면 다시 기초반으로 돌아가야할지도 모른다. 제 구실을 절반쯤밖에 하지 못하는 발목으로 60년 이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 절망스러워 다리를 다친 날 올라간 언덕 위에서는 그렇게도 서럽게 눈물이 났다. 옆에 친구가 없었다면 엉엉 하고 울었을 것이다. 친구들에게는 연례 행사 치룬거야, 하고 웃으며 말했지만 사실 다리를 다치고 한 두달간 몸을 사용하는데 제약을 걸어야하는 때가 나에겐 벅차도록 다루기 어려운 순간들이다. 매년 겪으면서도 매년 새롭고 매년 어찌 해야할지를 몰라한다.

피아노를 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하루에 두 시간도 채 공부는 안하지만 세 시간을 훌쩍 넘게 건반 앞에 앉아 보낸다. 빨리 잘 치고 싶다, 좋은 소리를 내고 싶다, 내가 원하는 소리를 알고싶다, 손가락 힘을 기르고 싶다, 건반이 아닌 피아노를 치고싶다. 건반 앞에 앉으면 욕망이 샘솟는다. 무언가를 간절하게 원하는 마음에 눈물이 나거나 원하는 결과에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에 신이나서 눈물이 나거나 한 건 피아노 앞에서 밖엔 없었다. 카푸스틴의 소나타는 절대 못 칠 줄 알았다. 4분음표를 120에 놓고 쳐야하는데 8분음표를 120에 놓고 쳐도 도무지 손이 돌아가지를 않고 그보다 느리게 쳐도 악보를 보는데 급급해서 이 곡이 알레그로인지 안단테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우아한 유령을 연습하다가는 잘 되지 않아 속상한 마음에 피아노를 쾅쾅 내리치고 소리를 지르고 스스로를 타박하고 그런데도 손열음의 연주를 들으면 또 너무 황홀해서 눈물이 났다. 왜 나는 손열음처럼 소리를 낼 수 없는가. 손열음은 4살부터 지금까지 피아노를 쳐왔으니 그의 연주와 나의 연주를 비교하는 건 무리, 아니 그냥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지만 피아노 앞에선 그런 어처구니 없는 비교를 해댄다. 그러다 어제는 우아한 유령도 카푸스틴 소나타도 매끄럽게 칠 수 있었고 곡의 막바지로 달려갈 때 즈음엔 마음이 벅차 소리내어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피아노 앞에서는 쉽게 이성을 잃는다. 그리고 그럴 수 있어 좋다. 이 시기를 피아노가 없으면 절대 견디지 못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생일은 어찌어찌 보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실망하고 의외의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그리고 언제나 나에게 다정한 사랑을 보내는 사랑하는 친구들. 사랑을 주면서는 되돌려 받을 생각은 말고 그저 주기만 해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왜 누군가는 받은 것의 절반도 돌려주지 않나 하는 원망이 스멀스멀 생긴다. 약속을 해놓고 지키지 않거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빈말을 하는 사람들이 싫다. 관계에서 많은 걸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 안정적이고 꾸준하고 의지할만한 관계를 찾기가 쉽지 않다. 윤서에게서는 문자도 한 통 받지 못했고 태영과 서라에게 받은 소포에는 모두 책과 편지가 들어있었다. 저녁에 오기로 한 아홉 명 중 막상 온 것은 여섯 밖에 되지 않았고 나를 두 달 쯤 안 친구에게서는 맘에 꼭 드는 선물을 받았고 함께 여행도 다녀온 친구에게선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건 아주 작은 것들이다. 진심을 담아 편지만 한 통 써줘도, 내가 자주 가는 꽃 가게에 가서 꽃 한 송이만 사다줘도 좋았을텐데. 누군가가 내가 열 번도 더 말한 라즈베리 무스케익을 – 조각케익이라도 – 사다줬으면 정말 행복했을거다. 대신 내가 받은건 족히 스무 명 배는 불릴 수 있는 초코 브라우니 케익이었다. 가끔은 사람들이 덜 말하고 더 들었으면, 하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