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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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를 했어야 했다. 맞은편에서 한 손에 와인병 두 개를 든 누군가가 터덜 터덜 걸어온다면 무심하게라도 반대편으로 피했어야지. 유리가 떨어져 깨지는 소리보다 차가운 무언가가 얼굴에 튄 것을 알아챈 것이 우선이었고 그게 액체가 아닌 유리 조각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얼굴로 피가 쏠리면서 머리가 돌고 앞이 하얘져왔다. 등 뒤로 요동치는 사람의 목소리를 무시한 채 몇 발자국을 더 걸어 코너를 돌고서야 걸음을 멈추고 아, 역시 딕슨에는 오는게 아니었다, 생각했다. 물통을 안가져왔으면 어쩔뻔했나. 마른 입을 적시고 심장에 손을 대보고 손바닥으로 심장을 잡을 수 있을 정도의 빠른 심박수를 느끼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항상 궁금했다. 왜 딕슨엔 이렇게 좆같은 인간들이 많은가. 올해 초엔 딕슨으로 가는 트램 안에서 술취한 아저씨가 내 맞은 편에 앉아 소리를 지른 적도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트램에 탄 순간부터 냅다 소리를 지르던 그 아저씨가 하필 내 앞에 앉기로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핸드폰을 보며 모른척 가만 듣고 있다가 한 번만 더 소리를 지르면 진짜 당신을 죽여버리겠다는 눈빛으로 그 사람을 쳐다봤었다.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다는 눈빛으로. 니가 잃을 게 없는 만큼 나도 잃을 게 없다는 눈빛으로. 그 인간도 술을 들고 있었다. 그럼 술이 문제인건가?

어쩌면 딕슨도 술도 아닌 내가 문제인지도 모른다. 그런 가정을 하는 순간 이러한 생각에 굴레에 빠진다: 내가 여자라서? 내가 아시아인이라서? 내가 이민자라서? 내가 중국인처럼 보여서? 내가 만만해보여서?

정말 모순적이게도 길에 나앉은 많은 사람들, 혹은 시비를 거는 쪽의 사람들은 늘 호주인이었고 그 반대편에 선 것은 늘 이민자들이었다. 외국에서 온 학생이라는 이유로 버는 돈의 33%를 세금으로 내야 했다. 그러한 비시민 신분의 학생이 70만. 그들이 벌어다주는 등록금, 세금, 그들의 경제 활동으로 창출되는 것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사람들에 입에 오르내리는건 그저 우리가 “빼앗아갈” 그놈의 일자리 그놈의 부동산. 그 전에 집 열 채를 사서 재산을 불리는 사람들을 먼저 탓했어야지. 그들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고 공공 주거시설을 하나도 짓지 않은 정부부터 탓했어야지. 약한 사람, 주류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탓한는 건 쉽다. 그래서 손가락은 이상한 곳으로 향한다.

다시 딕슨으로 돌아가서. 트램 안에서 그 아저씨가 하필 내 앞에 앉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 와인병이 하필 내 옆에서 꺠진 이유는 무엇일까. 2017년 캔버라, 학교를 마치고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가는데 갑자기 계란을 맞은 이유는 뭐였을까. 2018년 시드니 탑 맨 (지금의 메카) 앞의 교차로에서 그 스탑 사인을 든 남자새끼가 나한테 소리를 지른 이유는 뭐였을까. ‘오버하지 말자, 그냥 그 사람들이 이상해서 그런거지 내가 여자라서, 내가 외국인이라서 그런건 아닐거야’ 라고 항상 생각하려 했음에도 우체국에서 백인 여자와 중국인 유학생을 대하는 직원의 표정이 너무나도 다른 걸 보면서 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정당화를 하나 하는 생각을 했다.

코너와 잘 되지 못하리란걸 깨달았던 것도 그 애가 원주민에 대해서 어떻게 이야기 하는지를 들은 뒤였고 빈센트와도 오래 가지 못하리라는 걸 알았던 것도 그가 이민자의 삶과는 어떠한 접점도 없었음을 알고나서였다. 한국인 여자와 사랑을 하고싶다는 이야기를 이미 2022년 적어냈음에도 왜 반복된 실수를 했을까.

가현언니와 나누었던 이야기도 적어야 한다. 안주하는 사람들과 움직이는 사람들. 이불을 툴툴 털면 쌓여놓은 이야기가 쏟아지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