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덤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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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초 언젠가

봄 나물 먹는 삶.

한국에선 미나리를 무쳐 먹었다. 그 허브같은 나물을 살짝 데쳐 소금과 참기름에 살살 무쳐 한 입을 먹으면 콧속으로 고소하고 달짝지근한 향이 훅 하고 들어왔다. 파삭거리는 갓 구운 김에 뜨끈한 쌀 밥을 후후 불어 한 김 식혀 올리고 미나리를 올려 싸 먹으면 그리 간단하고 맛 좋은 점심이 없었다. 부추가 철일 때에 냉장고에는 늘 부추전 반죽이 있었다. 점심을 하기가 귀찮을 때면 부추전을 두 장 구워 나 하나 엄마 하나 먹었다. 엄마가 하는 부추전은 늘 바삭했다. 호주에 돌아와 엄마한테 그 레시피를 물어 해 먹은 부추전은 그 맛이 안났다. 3천원에 한 줌도 되지 않는 서양 부추로는 아무래도 안 될 요량이었다. 할머니는 봄동으로 된장국을 하셨다. 멸치의 쌉쌀하고 구수한 맛과 봄동의 달큰함과 집 된장의 꼬릿함이 어울려 투박한 국 한 그릇을 만들어냈다. 그 국에 밥을 말아 무말랭이를 올려 먹고 후식으론 초봄 딸기를 먹었다. 달래로는 전을 해먹고 냉이는 고추장과 설탕을 넣고 참깨를 넉넉히 뿌려 산뜻하게 버무렸다. 봄이 오는건 경칩에 우는 개구리도 꽃샘 추위도 전에 피어버린 벚꽃도 아닌 시장의 가판대를 보고 알았다. 시장 입구부터 축축한 흙냄새와 향긋한 봄 나물 내음이 풍기고 해가 반만 드는 천막 아래가 온통 초록임을 눈치챘을 때 아 이제 봄이다, 했다.

한국의 봄 나물은 정말 봄에 밖에 나오지 않아서 그 때를 잘 맞춰 먹어야 한다. 질리도록 실컷, 1년은 생각도 안나도록 사치 부리듯 먹어두어야 그 한 해를 버틸 수 있다. 그럼에도 겨울 초입이 되면 미나리 무침이 그렇게 먹고싶다. 그러면 내년 봄 초입 시장에 가 봉지 가득 초록 나물을 담아올 것을 생각하며 한 겨울을 참아낸다.

또 다른 6월 초 언젠가

가현 언니는 갑자기 인스타 디엠으로 내일 전화를 해야겠다 했다.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냥 나랑 전화를 하고싶은 거였다. 언니랑 마지막으로 얼굴을 본 게 5년 전이라는게 믿을 수 없었다. 그 중간 우리가 주고받은 엽서가 몇 장인데!

외국인으로 사는 일, 이방인으로 사는 일, 본토인이 아닌 것. 여기에도 저기에도 속하지 못하는 일. 언니도 나도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20대의 대부분을 보냈기에 거기서 오는 ‘어디에도 속하지 않음’에 대한 정서를 공유했다. 여기서 만난 외국 친구들이 언제든 어디로든 떠날 준비가 되어있던 건 그들이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아이슬란드에 가서 살자 했던 것, 그리고 나는 어디에 가서 살아도 좋다는 말은 그의 말과는 달리 진심이었고 또 진실이었다. 그게 자유라면 자유일 것이고 불안정이라면 불안정일 것이다. 생각하기 나름이겠지. 그리고 이어졌던 속 좁은 사람들의 이야기. 여기 사람들은 그릇이 작아, 언니 여기도 마찬가지야. 사람들이 다 우물 안 개구리같아. 그러고 내린 결론은 사람 사는 데 다 똑같다는 거였다.

언니는 호주를 그리워하고 나는 네덜란드를 그리워하고. 언니는 네덜란드를 지겨워하고 나는 호주를 지겨워하고. 언니는 너 같은 친구라도 있으면 좀 덜 심심할텐데, 했다. 언니도 나도 한국인들을 기피하다가 이유도 모를 기회로 서로를 찾았다. 한국인이라면 지긋지긋해하던 두 사람이 어떻게 친해지게 됐을까. 내가 데이비 언니가 킨록에 살던 때 우리 집 소파에 앉아 같이 와인을 마시던 때가 기억났다. 그 때 나는 스물이었고 언니는 스물 넷이었는데 어느새 나는 그 때의 언니 나이를 훌쩍 뛰어넘었다. 전화를 마치면서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엔 꼭 유럽에 가겠다 했다. 여름을 거기에서 보내도 좋을 것이다. 그럼 언니와 함께 아이슬란드의 백야를 봐야지.

6월 12일

엄마 목소리만 들으면 우는 병에 걸렸다. 아빠 목소리를 들어도. 5월 초여름의 하늘 아래 공항 버스를 기다리면서는 눈물을 쏟지 않기 위해 입술을 많이 깨물었다. 아빠의 토닥임과 그와 대비되게 멀리 서 있던 엄마의 모습이 못내 아쉬워. 그 아쉬움이 여전히 마음 한 켠에 남아있는 탓일테다. 그리고 매번 드러나는 나의 무능함. 결국에는 또 손을 벌리게 될 것임을 아는 마음. 매번 처지를 설명해야 하는 수치심. 그냥 ‘슬픔’의 감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냥 슬퍼서 눈물이 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처절함, 한심한, 미안함, 무력함. 엄마의 목소리 앞에서는 모든게 벌거벗겨진 느낌이다.

6월 중순의 언젠가

2세대 이민자들은 언젠가부터 그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했다. 정체성 혼란, 문화 차이 그리고 영어 못하는 그들의 부모에 대해 이야기 했다. 하지만 누구도 21세기 영어 잘하는 고등 교육을 받은 1세대 이민자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들이 존재함은 알고 있지만 – 수많은 유튜브 비디오를 통해 – 그들은 그 삶을 활자로 엮어내지 않는다. 나의 이야기를 해내야 한다.

6월 27일

졸업한다 드디어. 고생했다 전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