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은 밤인간들에게 친절한 도시다. 밤 열 한시까지 아니 24시간을 여는 카페가 있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새벽 한 시의 카페에는 아무도 없을 것 같지만 의외로 카페 안의 공기는 사람들의 열기로 입김으로 후덥지근하다. 노트북을 앞에 두고 일을 하는 사람들, 중간고사가 끝나 팀 프로젝트를 할 시기이니 만큼 서너명씩 앉아 토론을 하는 학생들, 술에 취해 낮은 자세로 고개를 떨구고 앉아있는 아저씨들. 그리고 마음에 돌덩이를 한 아름 쌓아두고 갈 곳이 없어 방황하는 나. 이유야 어찌 되었든 중요한 건 여기서 나는 혼자는 아니다. 아니, 혼자이지만 혼자서 혼자인 것은 아니다. 서울은 홀로인 사람들에게 다정하다, 그들이 홀로가 아니라고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저녁을 먹고 쉬다 아홉 시쯤 집을 나와 자정을 넘겨 새벽 한 시 두 시가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엄마는 집에서 공부를 하지 왜 자꾸 돈을 써가며 밖에 나가서 공부를 하냐고 묻는다. 집에 붙어있지 못하는 것은 아마 나의 우울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솔직한 마음으로는 집에서 책이나 보다가 울다가 자다가 깨서 김치찌개에 밥먹고 예능이나 보고싶다. 그러나 – 그럼으로써 나의 우울이 극대화되는 것을 알기에, 왜냐하면 나는 모든 것에서 트리거를 받으니까, 거기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죽지 않으려면 책임지고 내 마음을 돌보아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잠 못드는 사람들이 한가득인 24시간 여는 카페로 향한다.
정신건강의학과에 간 것은 어쨌든 잘 한 일이라고 결론지었다. 우울증이라는 진단명을 받은 것부터가 위안이었다. 진단명이 나의 행동에 대한 변명이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왜’에 대한 어느 정도의 대답은 된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마음이 놓였다라. 그렇다기 보다는 뭐랄까… 그냥 내가 좆같은 인간이어서 그런 생각을 했던게 아니었구나 했다. 의사 선생님은 우울증이라는 장애가 사람으로 하여금 별의 별 생각을 다 하게 한다고 말했다. 그런 생각들은 당신의 머릿속에서 오는 것이 아닌 병에서 오는 것이라고, 당신의 생각이 아니라고 했다.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처방받고는 약국에가서 실제 약을 받기까지는 하루가 더 걸렸다. 이걸 먹는게 잘 하는걸까, 한 번 먹으면 평생을 먹어야되는게 아닌가 걱정하면서도 씨발 감기약은 잘도 먹으면서 왜 이 약은 못먹어 하는 마음으로. 아무튼 그 결정을 내리는데만도 하루가 걸렸다. 웃긴건 그 약을 먹고는 그 다음날 여덟 시까지 잤다. 매번 새벽 네시에 뛰는 심장으로 깨던 사람이 한 시부터 여덟 시까지 내리 잠을 자다니. 플라시보 효과인지 몰라도 별 상관 없었다. 세 달만에 멀쩡한 잠을 잘 수 있어 좋았다.
엄마에게 정신과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던 계획은 내 가방을 뒤지는 엄마 덕에 하루만에 무산이 되었다. 엄마는 처방받은 약을 보고는 왜 말을 하지 않았냐고, 뭐가 마음이 그렇게 불편하냐고, 약을 너무 오래 먹지는 말라고 (자기가 의사라도 되는 양), 그리고 연애를 하라고 했다. 아이고 엄마, 대체 내 불안을 야기하는게 뭔지알고 연애를 하라고 하시나요. 그럼에도 눈물이 두 번이나 날 뻔한걸 꾹꾹 참았다. 아랫 입술을 하도 깨물어서 이가 닿은 곳에 희미한 선이 남았다. 그래도 잘 참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울면 엄마도 울 것 같았다. 혹은 엄마가 나를 안아주기라고 한다면 어쩔 줄 모를 것 같았다. 아마 그럴 일은 없었겠지만.
메시지 창에 뭘 검색하려 하면 자꾸 그 애의 이름이 떠서 – 그 이름이라니 마치 볼드모트같다, 그의 이름을 불러서는 안돼! – 검색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사진첩을 뒤질때에도 눈에 초점을 흐려 필요한 곳으로 즉시 넘어가곤 했다. 아니 그냥 웬만해서는 사진첩을 열려고 하지도 않았다. 인스타에는 대체 왜 시드니 맛집 정보가 그렇게 뜨는지 하나씩 눌러 ‘관심 없음’을 눌렀다. Not interested! 그러다 며칠 전 오전에 공부를 하다가 무슨 이유인지 사진첩을 열어 우리가 찍었던 사진들, 비디오들을 하나씩 열어보았고 그 애가 적었던 편지나 다이어리를 찍어둔걸 읽어보면서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다. 중요한 과제를 해야했고 밀린 수업도 들어야했고 비자 문제도 해결해야 했으므로, 그러니까 나한텐 책임져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으므로 일단 감정을 헤아리는 일을 뒤로 미뤘었다. 이렇게나 할 게 많은데 가만 앉아 엉엉 울며 애도나 하는 것은 사치이니까. 그러나 했어야 하는 일이었다. 진작에 했어야 했다. 나는 내 감정과 무척이나 친한 사람인데 내 감정을 들여다보는 일을 미루니 사람이 돌아버릴 지경에 이르렀다. 정작 밀린 수업도 듣지 못하고 과제도 하지 못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눈은 감길듯 아팠지만 내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알았다.
안녕하세요 전형님 저 이주연이에요 예전독서모임에서! 블로그 올린거 보고 방문해봤어요! 서울에 계신가요? 저 2달뒤쯤 서울 가는데 그때도 계시다면 한번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