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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갑자기 전부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까. 지하철에서는 죽고싶었다. 약을 먹는게 무섭다. 그래놓고 인스타 릴스 몇 개를 보니 또 괜찮았다. 전남친이 준 개를 키우는 영상 속 여자의 웃는 모습이 너무 예뻐서 그냥 한동안은 내 모습이나 잘 가꾸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럼 괜찮아질거라고, 스물 여덟이 되기 전에, 5개월 남았네, 좀 괜찮아지자고. 자존감은 어떤 문제인가
You don’t have to be the idealised version of you to trust that some body is attracted to the present version of you 라고 인스타 릴스에서 어떤 언니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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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영어로 쓰기 시작했다. 가끔은 영어로 표현하는 것이 쉬울 때도 있다, 특히 말을 할 때는 더 그런데 아마도 그 이질성 때문일 것이다. 정신과 선생님을 만나서 한국어로 내 감정이나 증상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낯설었다. 너무 친밀한 이야기였다. 영어로 말하면 벽이 하나 생긴다 그래서 제 3자에 대해 이야기하듯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지인보다 낯선이에게 말을 붙이는 것이 쉬운 이유와 비슷할 것이다. 잘 알지 못한다는 감각, 익숙하지 않음이 오히려 나를 더 개방적으로 만든다. 내 언어로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당신이 나를 아는 것도 아니고, 그러므로 빠져나갈 구멍이 있고 비난으로부터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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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좀 끄자.
카이는 인스타 라이브에서 자신이 25살이었을 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는 잘 생각해보지 않는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고 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이 삶에서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 외국에 나와 산 이후로부터 아니 그러겠다고 마음을 먹었던 순간부터 서점을 열고 싶었다. 타국 생활을 하면서 가장 그리웠던 건 가족도 친구도 음식도 아닌 책이었다. 언제나 한국어 책을 찾아 헤맸다. 시드니에서 한국책을 보유한 서점은 서큘러키 앞 도서관이 유일했고 도서관 2층 디브이디장을 쭉 따라 걷다 어느 방으로 들어가면 왼쪽 작은 방엔 벽 두 면이 수두룩하게 한국어 책들이 꽂혀있었다. 이미 읽은 책이 절반, 한국에서는 더 이상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 태반이었기에 나는 그 중 민음사의 올해의 젊은 작가 시리즈랄지 세계문학전집이랄지 하는 책들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았다. 김영하보다는 정세랑 김초엽 한강 양귀자의 이름을 찾았다. 그러면 꼭 그 곳이 천국같았다. 이틀에 한 번 기차를 타고 시청역에 내려 도서관으로 걸어가는 그 순간이 꿈같이 행복했다. 다섯 권 여섯 권씩 빌린 책에 가방 모양새가 무너져내리고 그 무게에 내 어깨가 내려앉아도 발걸음은 가볍고 마음은 풍족했다. 그리고 이걸 원하는 사람이 결코 나 혼자는 아닐 것이라고, 타국에서 자신이 처음 입 밖으로 뱉은 언어를 그리워 하는 이가 나만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도서관은 어떻게 열지? 소수의 사람을 타겟팅하는 서점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소소책방 사장님과 이야기해봐야지. 키노쿠니야는 체인이어서 살아남을 수 있나? 실제로 원서는 얼마나 팔릴까? 아이들 책은? 어렸을 때 했던 웅진 북클럽의 비지니스 모델. 사람들이랑 많이 이야기해봐야 한다.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자. 상담을 계속 받아야 한다. 감사 일기. 내가 오늘 잘 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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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gs feel heavy.
어떤 우정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 야오는 문자로 ‘절대 널 그냥 동료로만 생각한 적은 없어’라고 했다. 우리는 왜 한 번도 같이 논 적이 없을까, 왜 한 번도 그와 사적으로 만나 친구가 될 생각을 못해봤을까. 그 말도 안되는 드라마 때문에 관계의 가능성에 그림자가 졌던 것일테다. 예상하지는 못했지만 꽤나 기뻤다. 야오는 속이 다 들여다보인다. 솔직한 것과는 조금 다르다. 잘 숨기지 않는다, 잘 읽힌다. 브라이언이 그를 보며 가면을 쓴 것 같다고 한 것은 그가 아직은 사람 보는 눈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꺼져, 신경 꺼. 내 삶을 왜 궁금해하니, 왜 알고 싶어하니. 그보다 대체 뭐가 알고싶은거니. 내가 살아있는지? 너가 없어도 괜찮은지? 씨발, 당연히 괜찮지. 괜찮지 않아도 너가 우려했듯 자살하는 일은 없을거야. 넌 날 그렇게도 몰라 그러면서도 알려는 노력도 안했고 그저 아는 척만 했어. 마음대로 판단하고 너 좋을대로 해석하고 내가 변하기를 원하면서도 스스로 변하려고는 하지 않고. 날 그대로 좋아하지 않았잖아 내가 가면을 쓰기를 바랐잖아. 그건 폭력이었어. 내가 가학적이라고 너는 장난치듯 말했지만 씨발 진짜 폭력적인건 너였어.
눈이 흐리다. 이대로 앞을 보지 못하게 된다면. 보지 못하는 생은 하반신이 마비되거나 말을 하지 못하는 생보다 길고 외로울 것이다. 어쩌면 좋을지도 모른다. 처음엔 많이 울겠지만 추함을 보지 않으려 특별히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