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은 글을 쓰지 않았고 그 이유는 잘 모르겠다.
열 아홉 때는 어떻게 하루에도 2000자, 4000자를 써내려갔는지, 그 때는 참 똑똑하고 명석했다. 지금은 뇌가 멈춰버린 것만 같다. 두 시간짜리 강의를 듣는 것도 힘에 부친다.
좋아하는 공부를 했으면 여전히 똑똑했을까. 조주은 선생님이 이끌던 문화산업 수업에선 늘 강단에서부터 세 번째 줄에 앉아 눈이 빛나도록 선생님을 쳐다보고 스크린을 쳐다보고 필기를 하고 그 땐 강의를 듣는 두 시간이 마치 30분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공부를 하면 지금보단 훨씬 빛나는 사람이 될 것 같다. 가끔은 그냥 문화산업 석사를 할 걸, 그리고 프랑스로 유학을 갈 걸 하는 생각도 한다. 사는 곳에 너 자신을 한정해서는 안된다고 엄마가 그랬는데 요즘엔 그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기도 하다.
운동에 강박을 가지고 그러지 않는 동안은 식욕을 조절하지 못하고,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사다 나르고 별 것 아닌 말들에 웃고 과도하게 긍정적으로 행동하는 것들이 모두 우울의 증상이라고 했다. 운동은 여섯 가지나 하고 한국어도 가르치고 일주일에 스무 시간씩 일을 하면서도 공부는 일절 하지 않는다. 나는 여기서 뭘 하는거지. 왜 호주에 온거지. 하고싶은 공부를 해야한다. 피아노를 칠 때는 잘 안되면 속상해서 눈물이 절로 나고 그럴 때면 손열음의 연주를 들으면서 말도 안되지만 저렇게 피아노를 치고싶단 생각을 한다. 그런데 누가 생각해도 어이없는 그 질투가 연습의 기폭제가 된다. 며칠간 이게 안되네 저게 안되네 눈물 콧물 흘리며 연습을 하다보면 이걸 칠 수 있을까, 의심했던 부분들을 절로 칠 수 있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런 순간이 쌓여서 이젠 연습의 힘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피아노와는. 지금은 화나고 어려워도 며칠이 지나면 해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됐다.
결국 시작은 질투다. 더 잘 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 마음이 내 분야에선 전혀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자꾸 회피한다. 그럼 이 분야를 떠나야하는게 아닐까. 어쩜 정말 하고싶은 공부를 하다보면, 그러니까 내 분야에서 잘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고 잘 하는 사람들에 대한 질투가 생기고 잘하기 위해 분투하다보면 절로 빛나는 눈과 순수한 마음이 생기지 않을까. 그럼 마음이 건강해지고, 몸을 혹사시키기 위해 운동을 하거나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강박을 가진다거나 하는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