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4일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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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한나의 책을 읽었고 서울에 있다면 그의 북토크에 갔을거라 생각했다. 그럼 그와 같은 나와 같은 여자들이 그가 내뱉는 말을 듣겠다고 옹기종기 앉아 같은 숨과 열기를 내뱉을 것이다. 그 가운데 앉으면 묘하고 야릇한 기분이 들 것이다.

성애는 육체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고 육체적, 정신적, 감정적 경험을 공유하는 것에 기반한다는 오드리 로드의 말에 깊게 공감하고, 그래서 여자들과는 모든게 쉬웠고 남자들과는 늘 힘을 써야했는지도 모른다. 내 인생에 잠깐이라도 들렀던 남자들은 내가 여자를 만났다는 사실을 들으면 그렇게 눈을 밝히며 늘 섹스에 관해 물었고 – 무례하게도 – 여자와의 관계가 훨씬 좋다고 말을 하면 대게는 역시나 그렇겠지 했고 어떤 이들은 그게 ‘훨씬’ 좋을 리는 없다 했다. 전자의 반응도 그리 달갑지 않았고 후자의 반응은 역겨웠지만 거기서 더 말을 하지 않았던 이유는 어차피 말해도 모를 것이기 때문에. 아그들아 궁금하면 너네도 남자를 만나보든가.

나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그 이유가 단지 현실을 회피하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지금에야 깨달았다. 어릴 적부터 아주 대강은 내가 원하는 삶을 그릴 수 있었고 대학에 오니 그 추상을 구체화 하는 것은 시간 문제였다. 9년 전의 나는 이미 모든 걸 알고있었고 아주 명확하게 글로 적은 바도 있었다.

여성은 왜 끊임없이 여성과의 관계를 탐하고 그것에 대해 파고들고 말하고 쓸까. 남성들은 왜 그들의 관계에 대해 말하지 않을까, 디폴트 인간으로 살아서 그런건가. 아무튼 그렇게 눈이 트이고 말이 트이고 몸은 열어제끼면 그 전으로 돌아가기는 어렵다. 4b 운동이 미국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고 했다. 한국 자매들의 5년 전을 미국의 자매들이 겪고 있고 그 물결이 호주까지 오려면 얼마의 시간이 걸릴지는 모르겠다. 이 나라 사람들은 개방적인 척 아주 보수적이다. 어쩜 요즘 자꾸만 한국에 가고싶었던 이유는 그냥 조금 급진적인 맥락 속에서 여자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른다.

헤메지 말자. 어제는 계속 멍하다 햄스트링 스트레칭을 했고 눈이 맑아지는 경험을 했다. 좋은 걸 하면 좋다는 걸 요즘은 자꾸 까먹는다. 좋다고 알고 있는걸 더 많이 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