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수에게 연락이 왔다. 숙이네 사진을 보내고선 여기는 여전히 그대로여, 했다. 이 새끼 여자친구랑 헤어졌구만. 우리한테 연락을 다 하고. 괘씸하단 생각도 했지만 그래도 반가운건 어쩔 수 없었다. 아저씨가 너네 다 기억한대 라는 말에는 울컥도 하고, 숙이네 가서 닭발에 생맥주에 계란찜이나 조지고 싶다 생각했다. 한국은 가을이겠지. 범수가 보낸 사진 속 숙이네 인테리어는 내가 기억하는 것과 너무나도 똑같아서 그 속에 우리 셋이 자연스럽게 그려질 정도였다. 우린 무슨 죽이 그렇게 잘 맞아서 매일같이 놀러를 다녔는지. 첫 술도, 첫 외박도 범수와 윤서와 했다. 네이버 밴드를 만들어서 서로 찍은 사진과 동영상을 올렸다. 지금도 그 밴드를 훑어 보며 많이 웃고 가끔은 운다.
어느샌가부터 범수는, 아무래도 여자친구가 생겨서인지 연락이 뜸해졌고 내가 유학을 온 이후에는 가끔 한국에 돌아가도 윤서만 만나는 정도였다. 근데 이 자식이 먼저 연락을 하다니, 카톡 프사도 내리다니? 이별을 한 것이 분명하다.
아무튼 걔가 이별을 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고, 포인트는 범수한테 연락을 받아서 좋았다는 것이다. 그냥 좋은 거 아니고 너무너무 좋았다는 것이다. 그럼 왜 난 먼저 연락을 안했냐? 걔가 먼저 멀어졌으니 연락을 할거면 걔가 먼저 해야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이것이 이번 주 매들린과의 상담의 핵심이었다. 내가 생각하는대로 남들이 생각할거라 착각하지 말자. 모두가 다른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러니 기다리지 말고 원하는 것이 있으면 직접 하든 요구를 해라. 이야기를 하다보니 드는 생각은 – 내가 이걸 모르고 있었냐, 아니라는거다. 동일시 없는 사랑. 내가 민경 작가를 졸졸 따라다니며 좋아할 때 그렇게 외치고 다녔던! 아무래도 말만으로 외치고 다녔던건지 체득하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가끔은 정말 헷갈릴 때도 많다. 나는 정이 많은 사람이라 사람들 불러모으고 요리해서 밥 먹이고 그런걸 좋아하는데 내가 이만큼 손을 내밀면 상대도 그만큼 손을 내밀어주기를 바라는게 나의 욕심인건지. 그저 한없이 베푸는 사람이 되는게 답인건지. 호스트가 되는 걸 두려워하지 말자, 라는 글을 읽은 기억이 있는데. 아니, 호스트는 돈이 많아야 한다구요.. 매들린에게는 나의 욕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부끄럽다고 말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나에게 결핍이 있고 그걸 누군가에게 내보인다는 개념 자체가 부끄럽다고 말했다. 매들린은 그 기원을 찾아보라 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이야기 했을 때 질책당하거나 계속적으로 거절당한 기억이 있는지. 상담을 시작하고부터 과거를 들춰보는 일이 많아져 이젠 내 기억이 진짜 기억인지 내가 만들어낸 기억인지 잘 모르겠을 때가 있다. 아무튼 이번주의 숙제는 그 기원을 찾는 것과 수동공격적 행동에 대한 대안행동을 찾는 것이다.
근데 왜 갑자기 이걸 쓰냐면, 상담을 한지가 3개월쯤 되다 보니 정보 과주입으로 감당이 안되는 수준에 달했기 때문이다. 상담도 잘 정리해야지.. 암튼 졸리니까 이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