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이곳 저곳들에서 다른 세상의 이곳 저곳으로 부쳐진 많은 편지들을 생각한다.
네 생각이 났다고, 보고싶다고, 너의 생일이라고, 외롭지 말라고 혹은 내가 요즘 외롭다고 손이 빨개지도록 편지를 써보낸 사람들을 생각한다. 받은 편지는 방 한 벽 가득 붙여놓았다. 머리가 아플 때에는 침대에 누웠다가 편지가 한가득인 벽 앞으로 가 다정을 말하는 그 활자들을 읽고 또 읽는다. 지구의 어딘가에서 자기의 생을 살다 어느 순간 내 생각이 나 손바닥 한 장 가득 내게 전할 말을 적어내려간 사람들을 생각한다.
“역시 당신은 당신 나름대로 마땅하게 답을 찾아가고 있을거란 확신과 안심이 한 스푼 더해졌달까. 그냥 나는 당신이 거기까지 가서 채광좋은 방의 그 적당히 어질러진 채강 앞에 앉아서 과제도 하고, (…) 혼자 훌쩍 여행도 가고 그렇게 하루하루를 꾸려나가고 있는 것 자체가 정말 대단하고 대견하게 느껴져.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나한테 엄청난 실행력과 확신을 가진 사람이야.”
말이 가지는 힘. 하는 말을 아끼고 적는 말을 늘리는 것도 말의 힘 때문이다. 어떤 편지들은 나를 살렸다. 주저앉아 같은 편지를 몇 번이고 읽고 눈물이 쏟아져도 편지가 젖지 않도록, 그래서 다음에 또 어딘가 기대지도 못하고 그냥 바닥에 풀썩 앉을 수밖에 없을 때에도 찾아 읽을 수 있도록 한다. 김태영이 준 연필로 적은 편지에는 지우개로 지운 흔적이 많았다. 옷을 고르듯 단어를 고르고 적어 내린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단어를 고르고. 생각이 많은 편지는 많은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니스에서 암스테르담에서 예테보리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서울에서 제주에서 캔버라에서 시드니에서 멜버른에서 하와이에서, 서울로 아머푸르트로 대만으로 도쿄로 워싱턴으로 편지를 보냈다. 그말인즉 니스에서의 내가 서울의 너에게 니스를 선물하고 시드니에서의 내가 도쿄의 너에게 시드니를 선물하는 것이었다. 하와이에서 보낸 엽서 한 장이 너의 하루를 밝힐 수 있음을 알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