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들지 않은 인간도 책을 읽는다. 병들지 않은 인간은 책의 세계를 관광객처럼 둘러보고 자신에게 필요한 조각을 찾은 뒤 값을 치르고 길을 나선다. 그러나 병든 인간은 책의 세계에 기꺼이 자신을 바친다. 어떤 이는 자신이 제물이 되어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17)
아니 인용을 하려고 보니 인용하고 싶은 문구가 너무 많아서 이러다가는 책을 필사하는 꼴이 되어버리겠다 생각했다. 그러니 인용은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고 여러분들, 그냥 이 책을 읽으시길.
백 권의 책에서 마음에 드는 인용구 백 개를 따온 것이 아니었다. 백 권의 책에서 책에 관한 인용구 백 개를 따온 것이었다. 대체 김겨울 머릿속의 데이터베이스는 얼마나 방대하고 촘촘한걸까.
김겨울의 학창시절을 함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에게서 이야기를 듣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책에서 그의 학창시절을 만나보는 방식으로가 아니라 어쩌면 그의 집에 꽂혀있을지 모르는 두꺼운 사진 앨범을 펼쳐 나오는 그 속의 고등학생 김겨울을 만나고싶다고. 교과서를 세워 들어 그 안에 끼워넣은 다른 책을 읽는 김겨울, 책상에 잘 엎어져 자던 김겨울.
우먼카인드였나, 어떤 잡지에서 그의 인터뷰를 읽은 기억이 있는데 그 옆에 작은 글씨로 ‘나랑 똑같네 ㅋㅋ’ 하는 메모를 적어두었던 기억이 있다. 김겨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그녀가 나 같고 내가 그녀같고 마치 우리는 5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평행 우주를 사는 듯 했다. 내가 96년이 아닌 91년에 태어났더라면. 김겨울은 개포고를 나왔고 나는 세화여고를 나왔으니 어쩌면 우리는 대치의 어떤 학원에서 마주쳤을 수도 있고, 김겨울은 고대 심리를 나왔고 나는 고대 중문을 나왔으니 어쩌면 서관에서 마주쳤을 수도 같은 핵심교양 수업을 들었을 수도 있었겠다. 그와 왜 이렇게 대화를 나누고 싶은지. 어떤 꼭지를 읽으면서는 그와 내가 화자로 대화 형식을 이루는 글을 써보고도 싶다고 했다. 그러나 글을 쓰는 것은 나이므로 결국 그 글은 나와 또 다른 나의 대화이겠지.
경청이란 무엇인가. 김겨울은 집중하여 듣고, 때로는 맞장구를 치고, 질문을 하기도 하여 대화를 이끌어내는 의식적인 훈련이 필요한 일이라 했다. 나에게 경청이란 무엇인가. 나는 경청하는 인간인가. 책을 읽는 행위에는 언제나 대화의 속성이 있다. 활자와의 대화, 저자와의 대화, 등장 인물과의 대화 그리고 나와의 대화. 생각이 많아지면 책을 펼쳐들어 활자 안에서 수영을 한다. 어린 아이가 볼풀장에 뛰어들 듯 활자 속으로 뛰어들어 나를 문맥의 바다에 잠식시킨다. 그 안에서 나는 수많은 대화를 나누며 머릿속을 비워내고 그렇게 두 세시간을 책을 읽고나면 어쩐지 흐렸던 눈 앞이 선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