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요즘 진짜 한국 가고싶은 생각이 많이 든다?
예지야 이제 친구들이 다 떠나가. 다 자기 나라로 돌아가. 그렇지 않다 싶으면 외국으로 나가, 그래서 너무 외로워. 한국 친구들 너무 보고싶어. 그냥 퇴근하고 너랑 어디 용산이나 성수에서 만나서 소주에 곱창이나 먹고싶어. 주말에 너랑 국립 중앙 박물관 가서 전시 보고 카페가서 세 시간 수다 떨고싶어. 그게 너무 그리워.
내가 책을 얼마나 좋아하는 지 알지. 근데 여기서 한국 책 읽으려면 무조건 사서 봐야되는거 짜증나. 나도 도서관 가서 한국 책 빌려보고싶어. 고려대 도서관은 일년에 오만원인가 정도만 내면 졸업생도 이용할 수 있대. 중앙 도서관에서 책 빌려서 본관으로 내려오는 길 지나서 중앙 광장 옆 벤치에 앉아서 책 읽고 싶어. 전자책으로 안 나오는 책들이 너무 많은 것도 지겨워. 내 예스24 계정에 들어가면 장바구니에 담겨있는 책만 40권이 넘어. 그게 다 전자책으로 안 나온 책들이야. 양귀자의 <모순>이 전자책이 없다는 게 말이 되니? 오디오북만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니?!
<시선으로부터>의 심시선 딸 명은이 독일인인 자기 아버지 요제프를 두고 이런 말을 했어. “아버지는 그저 이주에 실패한 사람이었다고 결론 내리게 되었다.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있다. 어른이 되고 나니 차차 이해할 수 있었다. 연고가 없는 곳에 이식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흔하지 않았다. (…) 요제프 리는 한국에 연결되지 못했던 듯하다.” 이 책을 처음 읽은 2020년엔 이해하지 못한 말이었어. 유학을 꿈꾸고만 있던 그 시절엔 ‘나는 절대 저러지 않을거야’ 하고 생각했어. 그런데 지금은 명은처럼 나도 그 말을 이해하게 됐어. 연고가 없는 곳에 이식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흔하지 않다고.
내가 3년 전 유학을 왔을 때부터 매번 다니던 미용실이 있어. 내가 머리 하면 매번 자랑하는 그 미용실. 사실 거기가 한인 미용실인줄도 모르고 갔었어 처음엔. 워낙 한국인들 대상으로 광고를 안했거든. 그런데 뭐 어쩌다보니 서로 한국인인걸 알게 되어서 ‘와 재밌다’ 하고 서로 친하게 지내게 되었단 말이지. 그 분들은 호주에 온 지도 13-4년이고 영주권이 아니라 시민권도 있는 분들인데 얼마 전에 머리 자르러 갔다가 그 분들이 한국으로 영원히 돌아가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어. 재외동포 비자 받아서 간다고. 야 예지야, 쪽팔리는 말이지만 나 조금 눈물도 났어. 그런데 그 분들 말 들어보니 가는 이유가 이해가 가더라. 언니들은 20대 중후반에 호주에 와서 지금 거의 마흔을 바라보는데 한국에서 청춘을 살아보지 못한게 너무 아쉽다는거야. 호주에 와서는 여기서 정착한다고 아등바등댔고 비자에 영주권에 신경쓸 것도 너무 많았고 시민권을 받은 후에도 결국엔 이방인으로 살아가는게 쉽지가 않았대. 그래서 그냥 한국어 쓰는 나라에서 한국어 쓰면서 살고 싶다는 얘기를 하더라. 머리에서 필터 한 번 안 거치고 말하면서 살고 싶다고 하는데 참 이해가 가더라고.
미용실 선생님들한테 그런 얘기를 했어. 나 한국으로 돌아갈까 고민하고 있다고. 그랬더니 그 분들이 웃으시면서 ‘준한테 드디어 고비가 왔네요’ 하는거야. 듣자하니 그런 마음이 보통 이주 3-4년 차에 한 번 들고, 몇 년은 괜찮았다가 또 다시 한 번 들고, 그렇게 반복을 한대. 그런데 중요한 건 한 번 그런 생각이 들면 잠시 그 생각이 잠적을 할 지언정 절대 없어지지는 않는다는거야. 결론은 준은 여기서 계속 살고 싶으면 가정을 꾸려요, 였는데… 가정이고 나발이고 그냥 다 지겨워 죽겠어 지금은.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니 고등학교 때. 좋은 대학 가겠다고 아침 일곱 시에 일어나서 새벽 한 시에 잠들었잖아. 잠자고 밥 먹는 시간 말고 공부만 했잖아 – 가끔 노래방도 갔지만. 아무튼 그렇게 좋은 대학 갔잖아. 좋은 대학에서 좋은 학위 받고 석사 하는데 이딴 일 밖에 못한다는게 나 솔직히 너무 비참해. 한국에 가면 일하고 싶은데에 다 지원해볼 수 있는데 여기선 지원조차 해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잔인해. 나 출판사에서 일하고 싶어. 아님 미술관에서, 박물관도 좋아. 서점도 좋고 음반사도 좋고 영화사도 좋아. 그런데 여기서는 그런 일을 할 수가 없어. 이제 정말 내 커리어 생각을 해야할 때인데 아직도 헤매 난. 여기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해. 그래서 답답해.
나도 구민회관에서 월 4만원 내고 수영 다니고 싶어. 한달에 15만원 내고 테니스 배우고 싶고 20만원 내고 피아노 배우고 싶어. 예지야 나 정말 피아노가 너무 치고싶어. 여기서는 그게 안돼. 한국에서는 돼, 내가 알아.
내가 취준에 많이 힘들어서 요즘 이런 생각이 더 자주 드나봐. 한국에 살기 싫어서 여기로 도망을 왔는데 이젠 한국으로 도망을 가고싶은 기분이야. 난 언제까지나 도망자로 살 사람인가봐.
뭐 이런 마음도 지나가겠지. 그렇지만 미용실 선생님들이 말했듯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거야. 다음에 너를 만났을 땐 어떤 마음일지 궁금하다.
많이 보고싶어. 얼른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