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다혜, 유유출판사
1.
얼마 전 아이패드에 저장된 글들을 살펴보다 2019년 여름 40일간 유럽 여행을 갔을 때 친구에게 보냈던 엽서의 초안을 발견했다. 그 엽서를 보내는 일이 너무 소중해서 초안을 작성하고 약간의 교정을 거쳐 오탈자가 나지 않게 조심하며 엽서에 옮겨적던 기억이 있다. 혹여나 준비한 글을 종이 한 장에 다 담지 못할까 시작하는 글씨는 작게 쓰다가 그럼에도 약간의 공간이 모자라 끝에 가서는 이 줄이 이 줄인지 저 줄인지도 모르게 마무리를 지었었다. 짐을 한 보따리 챙겼음에도 아이패드와 키보드를 들고갔던 건 여행지에서 글을 쓰기 위함이었는데 서울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에서 썼던 기대에 가득찬 a4 한장 분량의 글이 그 여행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다. 그래서 이 편지들은 내가 실제 여행지에서 쓴 유일한 자료로 남아있는데, 그러니 엽서의 초안을 작성할 정도의 설렘과 준비성에 이렇게 감사할 수가 없다.
약 3년만에 이 파일을 발견하고 놀랐던건, 300자가 채 되지 않을 짧은 글을 읽음으로서 그 때의 기억이 아주아주 생생하게 돌아왔다는 점이다. 그렇게 생생한 묘사가 아니었음에도 그 때의 풍경이 그림처럼 그려지고 내가 무엇에 놀랐었는지도 그 때의 오묘했던 기분도 모두 기억이 났다. 니스에서의 나의 시간은 2019년 7월에 멈춰있는데 그 때를 다시 마주한 것 같은, 그리고 언젠가 그 곳을 다시 가겠다고 여러 번 다짐해왔던 마음을 다시 발견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안녕 잘 지내니? 나는 말로 다 못할 정도로 잘 지내고 있어. 책도 많이 읽고 운동도 하고 글도 많이 쓰고. 오히려 여행에서 일상을 찾아가고 있는 느낌이야. 오게 되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여기는 프랑스 남부의 해안 도시 니스야. 바다를 나란히 걸으면 바람 사이로 짭조름한 바다 냄새와 달큰한 무화과 향기가 함께 나. 정말 신기하게도 잘 익은 무화과 향이 나더라니까. 낮에는 무섭게 검고 파랗던 바다가 해 질 무렵이 되면 오히려 엷은 하늘색으로 변하는 신기한 곳이기도 해. 그런 모습을 담은 엽서를 찾고싶었는데 관광지의 엽서가 늘 그렇듯 뻔한 디자인들 뿐인게 아쉬워. 글로나마라도 너도 내가 느낀 것들을 느낄 수 있었음 좋겠어. 언젠가 프랑스에 오게 되면 꼭 니스에 들려봐! 또 연락할게, 안녕!
2.
호주에 오기 전 3년간 가지 않은 제주시 할머니댁에 다녀왔다. 엄마는 더 이상 가지 않는 그 곳에서 아빠의 삼형제와 작은엄마, 장손들이라 불리는 두 친척 동생들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와 둘러앉아 밥을 먹었다. 늘 큰 상 옆에 작은 상을 붙여 밥을 먹는 그 관습 속에서 나는 언제나 누가 먼저 자리를 차지하기도 전에 큰 상의 한 가운데 앉아 아무것도 모르는 척 밥을 기다린다. 엄마가 없는 그 난리통 속에 작은 엄마는 늘 무릎을 꿇은 채로 밥을 드시고 두 세트의 찬그릇 중 어떤 것 하나라도 비면 이거 더 드실래요?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 돌아오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그릇을 채워오신다.
할아버지 생신 이야기를 하다가 할머니 생신 이야기를 하다가 세 아들이 어머니께 이번 생일에 뭐 해드릴까요? 하는데 거기에 돌아온 할머니의 답이 어쩐지 나를 아직도 울리게 한다. 할머니는 ‘다른건 됐고 해외 여행이나 한 번 보내줘라’ 하셨고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작은 아빠는 여행은 무슨 여행이냐며 웃어넘겼다. 그러자 아빠도 웃고 삼촌도 웃고 할아버지도 웃고 결국 할머니도 웃었는데 결국 나만 웃지 못했다.
딸을 여섯 낳은 서귀포 할머니는 족히 여섯 번은 넘게 해외 여행을 다녀오셨다. 할머니는 해도 뜨지 않은 새벽 4시면 집을 나서 천지연 폭포를 한 바퀴 돌고 돌아오시고 문화회관에서 댄스스포츠를 20년을 넘게 배우시고 몇 년 째 내 앞에서 다리 찢는 모습을 보이시며 너는 이거 할 수 있냐며 물으신다. 그 질문을 들은지가 어언 10년인데 난 아직도 다리찢기는 못하고 할머니는 여전히 나보다 유연하시다. 할머니는 유독 나이에 비해 건강하셔서 명절이면 여행을 떠나는 딸들을 따라 세계 여기저기를 다니셨다. 내가 10살이던 2005년부터, 아니 어쩌면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그 전 부터 넷째이모의 둘째 딸이 10살이 되던 2019년까지. 서귀포 할머니가 내가 다녀 본 나라 중 어디가 좋더라, 하고 여행의 취향을 만들어가고 있을 때 제주시 할머니는 한 번도 이 나라를 떠나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밥을 먹던 중 내 가슴을 쿵 하고 내려앉게 했다. 그리고 그 떠남의 욕망을 비로소 밝혔을 때 누구도 그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많이 화나게 했다. 그 때 울컥하며 ‘제가 있을 때 호주 한 번 오세요’ 하는 말이 목 끝까지 올라왔는데 그 말을 입 밖으로 뱉지 못한 게 아직까지도 후회가 된다. 내가 나서지 않을 때 할머니는 한 번이라도 한국을 떠나볼 수 있을까.
그 날의 점심 풍경은 어쩐지 요즘도 자주 떠오르는데 그 때마다 나는 할머니가 호주에 꼭 오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