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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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스민와 함께 침대에 누워 정년이를 봤다. 그 애보다 몸이 더 길쭉한 내가 그 애의 옆구리를 파고 들었다. 나는 그 애의 겨드랑이와 가슴 사이에 머리를 기대었고 그 애가 숨을 마시고 내뱉는 그대로 머리가 움직였다. 여자 둘이 침대에 누워 여자들이 나오는 드라마를 봤다. 남역 분장을 한 정은채를 보면서 참말로 잘생겼다, 과연 매란 국극단의 왕자님이다, 하고 정년의 연기에 마음 떨려하는 주란의 모습을 보면서는 서로 허벅지를 팡팡 쳐대며 이게 사랑이지! 했다.

한국어를 못하는데, 한국의 정서를 모르는데 1950년대 한국 전쟁 직후 여성 국극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보면서 나와 같이 눈물을 흘리다니. 참으로, 이 여자는 심상치 않다. 드라마가 끝나고는 곧장 유튜브에서 그 애가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는 감긴 눈에 하품을 먹어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 애의 가슴에 얼굴을 대고 엎어져 누웠다. 그 애가 하품을 하면 내 머리가 그 애 몸 안쪽으로 쑤욱 하고 들어가는게 재미있었다. 그렇게 조명도 켜둔 채로 잠이 들었고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그게 꺼져있던 걸 보면 그 애가 자다 일어나 불을 껐던게 분명하다.

내가 아무리 울어도 그 애는 나무라지 않았다. 내가 책을 보다 울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로 나에게 그 부분을 소리내어 읽어달라고 했다. 그럼 나는 단단히 굳은 성대로 밑줄 친 부분을 읽어갔다. 그러고는 그 애가 어떻게 이 언어를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설명하고, 온갖 귀찮은 짓은 다 해서라도 내가 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해시킨다. 그럼 그애는 두 갈래 앞머리 사이로 미간을 찡긋 하며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웃음을 지으면서 그래 울만하네, 한다. 울만하네. 그래, 울만하지.

걔가 가끔 울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부드럽고 따뜻한 손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그렇게 그 애의 얼굴을 잡고 쓰다듬으면서 그래 이 시간의 너의 것이지, 하고싶다. 어떠한 허황된 말 보다도 확실한 몸짓이 있고 네가 확인하려 할 때마다 그것을 보여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