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지
너가 여기에 없게 된 것도 벌써 오 년이 다 되어가는구나
난 얼굴 가까이 시원한 바람이 불면 니 생각이 그렇게 나더라. 그게 여름이든 가을이든 시원하다, 하는 말이 절로 나오는 날이면 그 말 뒤로 니 목소리도 들리는 듯 해. 아마 너를 마지막으로 본 날이 청명하고 시원한 날이어서 그런가봐. 난 그날 저녁을 아직도 자주 생각해.
여름은 오고 있는데 작년보다는 속도가 많이 느린 것 같아. 재작년 이맘때는 제법 더웠던 것 같은데. 너도 기억하니? 그래서 그런지 요즘 너 생각이 많이 나. 시월도 이제 막바지가 다 되어가는데 저녁엔 여전히 쌀쌀해. 아주 이상하지.
내가 요즘 어떻게 지내고 얼마나 힘들고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은데 사실 난 그보단 너의 안부가 더 궁금해. 부끄러운 낯짝으로 전화도 걸어보고 집 현관이라도 두드릴 수 있다면 그렇게 할텐데. 그 수많은 무모한 방법들 중에 너에게 닿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도 없다는 게 먹먹해. 꿈에라도 나와주길 바라는데 어쩐지 넌 도통 보이질 않아. 뜬금없는 사람들, 이를테면 작년에 한 다섯 번 정도 본 사람의 얼굴은 자주 나오는데 왜 넌 나오지 않는지 처음엔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해. 언젠가는 때가 되면 나와주겠지.
어느 날, 아주 언젠가 너가 내 꿈에 나오면 화들짝 놀라 깨버릴까 나는 그게 가장 걱정이야. 넌 오 년간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아주 귀한 몸인데 내가 쓸데없는 호들갑으로 너를 달아나게 할까봐 말이지. 그래도 그런 걱정은 나만 할테니까 생각이 있으면 한 번 나와주길 바라. 정말로 많이 보고싶어.
시작은 했는데 무슨 말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어. 그냥 이렇게 어떤 말들을 적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면 믿겠니. 내 글을 많이 사랑해준 너니까 이해를 할 듯도 싶고 그치만 넌 나보다 열 배는 더 현실적이니까 쓸데없는 감상에 빠지지 말라고 한 소리 할 것 같기도 해. 참 이런 것 하나 예상도 못하고 내가 널 정말 모른다.
사람은 기억되는 한 살아있는거라고 어떤 예능에서 누군가가 말하는 걸 들은 것 같아. 내가 널 언제까지 기억할 수 있을까. 사실 잘은 모르겠어. 너가 나였다면 너는 나를 얼마나 기억해줬을까. 걱정마 그래도 앞으로 20년 정도는 더 보장할게. 그럼 넌 적어도 쉰 까지는 사는거야. 그 이후로는 장담 못 해. 그래도 이십년 쯤 했음 그 다음부턴 절로 기억하지 않을까. 내가 내 평생 너를 기억하다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그 곳에서 너를 다시 만나면 좋겠어.
부치치 않을 편지를 또 써, 나는. 다 써내려간 길고 긴 편지를 어디로 보내야 할지 그 고민을 매번하다 그냥 구겨서 쓰레기통에 넣기 일쑤였어. 그래서 오늘은 그냥 여기다가 쓸게. 어디든 지나가는 길에 봐주길 바라.
요즘 힘들어서 그런가 니 생각이 많이 났어. 다음엔 더 가벼운 마음으로 올게
그럼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