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랑, 문학동네
1.
『시선으로부터』는 아주 많은 사람들에게 여러 번 추천을 받았다. 꼭 읽어야지 해놓고 작년이 끝나갈 무렵에 샀다가 올해가 밝아서야 읽었다. 새해 초에 읽어서 더 좋은 책이었다.
2.
책에서 익숙한 지명을 발견하는 걸 좋아한다. 특히 소설에서는 더욱. 소설은 기본적으로 상상을 바탕으로 하고 그 상상에 내가 아는 실제가 덧입혀지면 상상은 아주 생생해진다. 그런 점에서 뒤셀도르프와 하와이가 반가웠다.
뒤셀도르프를 아주 애정한다. 두 번을 갔는데 한 번은 2017년 애인을 만나러 갔던 독일에서 출근하는 그의 차에 타 들렀었고, 그로부터 정확히 2년이 지난 여름 유럽 여행을 하며 5일을 머물렀다. 뒤셀도르프가 예술가의 도시라는 건 책을 읽으며 알았다. 처음 애인의 출근길을 따라 그 도시에 갔을 땐 심카드도 없어서 미리 다운받아둔 구글 지도로 길을 찾아다녔다. K21, K20와 같은 꼭 가고싶은 미술관을 중심으로 공원, 건축물을 찾아다녔다. K20는 천장 조명이 특이했던 기억이 있다. 심시선이 있는 그 작품은 어디에 걸렸을까 생각했다. 오키프의 작품 옆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시대가 달랐으니 그렇진 않았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그의 작품 속 심시선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자신의 그림이 여기에 걸렸어야한다고 애통해했을까. 그래도 피카소나 몬드리안보다는 오키프의 작품 옆에 그가 있기를 바랐다.
<마이 퍼키 스몰 하와이안 티츠>가 발굴됐던 코넬리우스 슈트라세는 내가 두 번째 뒤셀도르프를 방문했던 때 묵었던 호텔 안타레스가 있는 거리였다. 아침이면 런데이로 조깅을 했던 그 거리에서 지독한 사연의 그 작품이 발견됐다니. 내가 알던 뒤셀도르프를 다시 머리속으로 되새겨보았고 기억나는 모든 장소에 심시선의 자취가 있을거라 생각하면 재미있었다.
하와이에 가보지는 않았지만 서퍼들이 많고 사람들이 느긋하고 자연이 멋진 하와이는 호주의 골드코스트나 선샤인코스트랑 비슷할거라 생각했다. 버스가 아주 느려 책도 읽을 수 있는 하와이에 꼭 가보고 싶으면서도 (또) 호주가 가고싶었다.
3.
심시선이 윤여정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윤여정 배우가 멋지다고 생각한지는 아주 오래고 그래서인지 심시선을 만나자마자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영민하고 꾸준히 배우고 일을 사랑하고 후배들의 말에 귀기울이며 그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넘겨주고. 젊은 사람들도 그들을 어려워하지 않는다. 그건 어떤 힘일까. 그들처럼 나이 들어야지 생각하면서도 내 그릇이 그만큼 되나 싶기도 하다. 윤여정이 책 내주면 좋겠다.
윤여정과 박세리에 관한 글을 쓰고 싶었는데 생각이 중구난방이라 정리하고 써야겠다.
4.
김난정은 어째 심시선의 피를 가진 그 딸들보다도 더 심시선같을까! 생각하는게 아주 담백하고 멋드러진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가 있었는데 책 읽은지 2주가 다 돼가서 기억이 안난다. 다시 읽고 적어야지.
5.
책 반절을 읽기도 전에 세 번이나 울었고 그 후로도 한 번 더 울었다. 울만한 구절들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내 상황이 잘 이입돼서 그랬나보다. 그래서 그런지 정세랑의 책 중 가장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