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 가려던 참 도어락 버튼 소리가 들리고 곧이어 홍서현이 들어왔고 걔가 요상한 포즈로 오~ 하길래 나도 요상한 포즈로 서서 오~ 했다. 그리곤 왔냐 왔다 하고는 나 화장실 가야함, 하고 화장실에 갔다. 치킨 배달이 왔고 상을 펴고 먹을 준비를 하는데 홍서현이 배달 봉투를 뜯더니 웨지 감자 꺼내들고 발을 엉덩이까지 차올리며 웨지 감자도 시켰지요 했고 나도 걔를 따라 말도 안되는 춤을 추며 웨지 감자도 시켰지요 했다. 그러다 갑자기 기억의 리와인드. 겨울의 일요일 온 창문을 다 열어놓고 맘마미아 사운드 트랙을 틀어놓고 나는 청소기를 들고 개는 물걸레를 들고 이게 청소를 하는건지 뮤지컬을 하는건지 잔뜩 웃었다. 청소를 제대로 했는지 안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현실로 돌아와서. 치킨을 먹을 때는 요상한 유튜브를 봤는데 하등 말도 안되는 유머에 박박 웃고 고양이를 보면서는 세상에서 제일 하이 피치의 목소리로 아구 귀여워 했다. 이게 나구나. 나 진짜 웃긴 인간이구나. 나 진짜 하나도 안 진지하구나. 진짜 바보같구나.
나는 참 무겁게 산다. 중력을 남들의 두 배는 받는 것 처럼 무언가에 짓눌려 산다. 김태영 생각 덤프에 쓰진 못했지만 김태영은 자기가 너무 가볍게 사는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나는 조금 가벼워지고 김태영은 좀 더 무거워졌으면. 홍서현과 함꼐 있으면 나오는 그 바보같음. 그것을 되찾기 위해 발레를 하고 피아노를 치고 결국은 나를 내려놓고 표현하는 일이다.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 중 3악장을 좋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그 마지막 1분. 피아노의 화려한 솔로가 끝나고 반 마디 정도의 정적 그리고 온 악기가 온 힘을 다해 큰 소리를 내는 것. 피아니스트는 피아노를 부셔져라 치고 있을 것이다. 손가락이 부러지고 피아노가 부러지도록. 부서뜨림 망가뜨림 파괴의 행위가 만들어내는 거대함 그리고 그에 기인하는 아름다움. 피아노 소리가 쨍쨍하게 들린다. 나는 이 부분만 들으면 늘 소름이 돋고 울음이 난다. 모두가 집단적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감각. 유자 왕은 어떤 생각으로 이 프레이즈를 칠까. 조성진은 무슨 생각을 할까. 거장들이 거장의 자취를 따라 걷는 것을 옆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것은 아는 자들만 아는, 아는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다.
서울은 사람들이 날카롭다. 사람들이 하나 같이 조금씩은 화가 나 있다. 털 끝 하나 건들였단 펑 하고 터저버릴 것 같다. 아마 인구가 너무 많아서일 것이다. 1000만명이 이 좁은 땅에 비좁게 구겨져서 살다보니 그럴 것이다. 구겨진 사람들은 얼굴도 구겨져있고 마음도 구겨져있다. 다리미 같은건 사치다.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하니까. 서울에서는 행복할까 했는데 역시나 그렇지 않았다.
타노스의 손가락 스냅처럼 우리보다 높은 어떤 존재가 한 번에 지구의 인구 반을 날리는 계획을 짜고 있다면 당신은 사라지기를 바랄 것인가 남기를 바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