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덤프 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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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하는지. 켜켜히 쌓인 먼지는 제 눈에 들고도 털어내야지 털어내야지 생각만 반복하다 지금은 희었던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검게 쌓여버렸다. 2월의 인덱스를 자주 생각한다. 3층의 그 넓은 서점 한 귀퉁이에 앉아 블랙 커피를 시켜놓고 머릿속에 쌓여있던 그 생각들을 끊임없이 뱉어내었던 그 경험. 해소 또는 해방.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오게 된 생각 덤프 1, 2, 3.

매일 같이 카페에 나가 책을 읽으면서는 점멸하는 화면에 대고 줄을 긋거나 그러다 한 단어에 꽂혀 생각이 피어날 땐 노트를 꺼내어 마구잡이로 글을 썼다. 어떤 날에는 노트도 펜도 가지고 오지 않은 스스로를 탓하며 그럼에도 죽어도 고개를 숙여 핸드폰에 글을 쓰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렸다. 그렇게 잊힌 글감이 몇 백개는 될 것이다. 그 말이 과장은 아닌 것이 머릿 속은 사고의 가지들로 얽히고설켜 단단히 뭉쳐있다. 손바닥만한 뇌에서 어쩜 이렇게 많은 생각들이 쏟아져 나오는지 산소를 물처럼 머금은 이 가지들은 머리를 넘어 목 뒤, 어깨, 가슴, 심장, 손 끝 발 끝까지 순식간에 엉겨붙는다. 오후 4시 45분이 되면 동네 한 바퀴를 뛰는데 그렇게 머릿 속의 잡먼지들을 탈 탈 털어낸 듯해도 이들은 자성이 강해 내가 잠든 사이 어느새 몸 이 곳 저 곳에 붙어있다. 이걸 써내야지 써내야지 한 것도 어느 새 한 달이 지났다. 그럼에도 쓰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잠. 우울증 약을 먹기 시작한 이후로는 잠에서 깨어나지를 못한다. 새벽에 깨던 것이 더 좋았던가. 네 시에 일어나 아침을 기다리는 것과 열 시에 일어나 아침을 놓치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나은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새벽에 일어나서는 박동하는 심장을 진정시키려 추운 복도를 몇 바퀴고 걸었고 그래도 심장이 벅차 그 두근댐이 목구멍까지 타고 올라올때면 소파에 털썩하고 앉아 숨죽여 울었다. 그러다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아침의 노란 빛이 거실을 가득 채우고서야 냄비에 두유를 데워 차이를 만들어 마셨다. 발코니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는 책을 읽기도 눈물을 쏟아내기도 차이코프스키의 로미오와 줄리엣 환상 서곡같은 가사없는 선율에 기대어 아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것들도 있었지 하기도 했다. 지금은 눈을 뜨면 열 시, 발바닥을 땅에 딛는 순간 중력의 두 배는 되는 힘으로 나를 잡아당기는 힘에 대항하며 한 발 한 발을 옮기는 것은 나의 환상. 나의 기대. 그러니 나는 그저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새로운 정보를 끊임없이 욱여넣는다. 꿈을 꾸지 않는 날이 없고 그러니 개운하게 눈을 뜨는 법도 없다.

알렉스에게서 피아노를 빌리면 좋을 것이다. 나는 피아노와 함께 할 그 3개월이 어떤 식으로든 나를 구원하리라 믿는다. 매일같이 피아노를 치고 선율에 나를 내던지고 노래를 할 것이다. 우아한 유령을 연습하면서는 손열음의 연주를 들으며 왜 나는 그녀가 아닌가, 왜 나는 피아노를 그만두었는가, 끊임없는 왜 왜 왜. 질문이 나를 지치게 함에도 나는 영락없이 질문에 늪에 갇히고는 했다. 회한. 영어에는 17만개의 단어가 한국어에는 50에서 110만개의 단어가 있다고 한다. 회한을 regret으로 번역하는 것은 ‘회한’의 맥락을 지우고 그 의미를 납작하게 눌러버리는 일이다. 결코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Annoyed나 frustrated로 내 마음을 전하기에는 단어의 깊이가 너무 얕아서 그저 악을 쓰고 화를 내거나 오히려 말을 하지 않았다. 머릿속에서는 오십개가 넘는 한국어 단어가 맴돌았고 그걸 한 단어로 정의내려 말하기에 나는 한국어를 너무 사랑했다. 생각이 구체적인데 말을 두루뭉술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김겨울이나 목정원의 글을 끊임없이 읽으며 마음을 정확한 단어로 골라 정의할 수 없는 한을 풀고는 했다. 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를 읽으면서는 역자가 참 큰 일을 해냈다, 좋은 글을 써냈다 했다. 작가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조각난 한국의 정서를 정작 그의 어머니는 제대로 구사할 줄 모르는 언어로 풀어낸 것을 역자는 원문이라는 씨실과 우리말이라는 날실로 엮어내어 아름다운 그림을 만들어 내었다. 역자는 매개자가 아닌 창작자임을 아는 사람, 그 차이를 이해하는 사람이 나한테는 필요했고 그는 결코 그런 사람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