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서는 예민함이 재미있다고 했다. 세상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눈이 재미있다고, 아니 세상이 그들에게는 아주 자세하게 다가오는게 재미있다고. 정답지 옆에 앉아 내가 쓴 답이 맞나 틀리나 알아보는 재미, 아무도 점수를 신경쓰지 않는 시험에서 마구 틀리고 정답지를 보면서 아 그게 맞는거구나 하고 헤헤 웃는 재미. 그래서 그녀는 예민한 우리를 친구로 둔다. 그녀는 예민한 사람이 둔한 사람에게 맞출 수는 있지만 둔한 사람이 예민한 사람에게 맞추기는 어렵다고 했다. 둔한 사람이 예민한 사람들이 보는 그 디테일을 캐치할 수 있었다면 그들은 애초에 둔한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자기처럼 나의 예민함을 즐기는 사람들 곁에 두어야 한다고, 그 호주 쌍둥이 놈을 나 같은 사람으로 만들어! 라고 했지만 나는 그것이 불가능함을 안다. 그러면서도 웃으면서 그래야겠네 했다.
원래 외국에 혼자 있으면 외로워, 나도 그랬어 뉴질랜드에서 어학연수 했을 때. 아무리 친구들이 있어도 그래. 그리고 연애에서는 더 외로운 사람이 더 힘든게 당연해. 생각해봤는데 성우랑 내 관계가 너랑 그 친구랑의 관계랑 조금 비슷한 것 같다. 성우도 일찍 집을 나와서 지금 혼자 살고 있고 나는 가족들이랑 살고 가족들은 어느 정도 내가 집에 붙어있기를 바라니 성우랑 매번 같이 지낼 수가 없어. 너도 그렇잖아. 너는 혼자 사는데 그 친구는 가족들이랑 같이 살고있고 그 애한테는 현실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한테 너무 소중한 사람들이니까. 가끔 나는 성우가 조금 서운할 수도 있겠다 생각해. 혼자 사는데 조금 외롭겠다고. 그래서 너를 보면 안타까워, 더구나 거리도 먼데 할 수 있는게 없으니까.
너는 내가 외롭겠다는 생각을 할까. 아니, 이미 나는 말을 했지 관계 속에서 외로움을 느낀다고. 그래도 너는 그런 생각을 해줄까, 가끔 준은 외국에서 혼자 사는게 많이 외로울거라고. 글리브에서 와인에 저녁을 먹고 차로 돌아가는 길 너에게 무슨 생각을 하냐고 물었는데 너는 너의 쌍둥이가 외로운 것 같다고 말했지. 너는 그 애를 생각하는 만큼 내 생각도 할까. 내가 조금 외롭겠다, 내가 서운하겠다 그런 생각을 할까. 윤서랑 통화하는 내내 윤서같은 애랑 사귀면 좋겠다 생각했다. 내 감정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과 사귀면 좋겠다 생각했다. 내가 그러니까.
실비아와는 서로 마주보고 앉아서 내내 울기도 한다. 오후의 좋은 햇살 아래에서 눈이 빨개져라 울다가 이야기하다가 서로를 껴안고 잘 가라고,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 전화하라고. 실비아는 집으로 돌아가고싶다고 했다. 여기는 너무 외롭다고. 집으로 돌아가면 조금은 쉬울 것이라고. 적어도 가족들이 있으니 정적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보면 집에 있을 때는 외롭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기도 하다. 아빠는 외로울까. 요즘은 자꾸 아빠 생각을 하고 그럴 때마다 눈물을 멈출 수가 없다. 엄마는 아빠가 외롭겠다며 집에 붙어있어라, 저녁이라도 같이 먹어라 했다. 오랜만의 한국이라 약속이 많았던 나는 점심 약속, 저녁 약속 때문에 집을 나갈 때마다 아빠에게 미안했고 그런 걱정 없이 친구들을 잘 만나고 다니는 동생이 야속하기도 부럽기도 했다.
지민과 했던 이야기들을 되짚어보다가 내가 지민에게 우리에게 연애란 디저트같은거라고 했던 말이 눈에 밟혔다. 나에게 연애란 디저트같은건데 나는 그에게 내가 디저트같은 존재니 아니니 했던 것이 우스웠다.
우리가 일년을 이야기를 안해도 한 번 만나는 그 순간에 서로가 서로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는걸 느껴, 그 순간이면 돼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