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영은 내게 너는 너무 어둡지는 않아서 빛이 비추면 그게 흡수되는게 아니라 그 빛이 너한테 스며, 라고 했다. 그래서 너도 조금 밝아져. 그러니 전형, 곁에 빛을 둬야 해. 그게 햇빛이든 (나: 그래서 내가 호주를 좋아하나봐) 밝은 사람이든 빛을 옆에 둬서 너도 조금 밝게 살아. 그리고 넌 뭔가 창가에 앉아있는 것 같아. (나: 나 원래 창가에 앉는 것 좋아해!) 응 그래서 너가 원할 때는 커튼을 착! 하고 쳐서 컴컴하게 있다가 또 너가 원하면 이렇게 빛을 받고 있는게 보여.
빛이 스민다, 는 어떻게 영어로 표현할까. 빈센트에게는 light stays on me 라고 했지만 사실 스민다는 것은 잔류보다는 조금 더 흡수에 가깝고 아주 아주 천천히 조심스럽게 일어나는 모습에 가깝다. 한국어를 좋아한다. 한국어에는 한국의 정서가 담겨있고 한국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 곳에서 나고 자랐으니 그 정서를 배경삼은 언어를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 한국을 떠나지 않고 싶어한 단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글을 쓰고 싶어서였고 글을 쓰는 일하고 싶어서였고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에 남아야 하기 때문이었다. 영어로는 초등학생처럼 쓰고 말한다. 오만할 생각일지 몰라고 내가 한국어로 얼마나 똑똑한지 얼마나 재미있는지 한국어를 못하는 친구들은 모를 것이다. 생각은 한국어로 하고 말은 영어로 하고 나는 번역가가 아니니 내가 생각하는 것을 빈센트가 그대로 이해하는 날이 올까. 언어는 나의 빛이고 나는 이 빛을 잃고 싶지 않다.
인간은 누구나 빛을 가지고 태어난다. 파란 불씨. 아주 뜨겁고 갓 태어난 작고 푸른 불씨는 커져 여러 노란 불꽃을 불려내고 빨간 불꽃을 불려내고 활활 타오르는 줄 알았더니 그 빛은 점점 죽어 결국엔 샛노란 빛만 남는다. 오렌지색의 오랜 빛. 빛이 노래지는 게 싫다고 했나 김태영이, 그냥 빛이 노래진댔나. 아무튼 나는 그래도 노란 빛도 예쁘다고 했다. 조금 성숙해졌을 때의 우리가 기대 된다는 말을 했던 것 같다.
납득의 순간이 있어야 한다. 태영이의 언니에게 (아마도) 빈센트의 누나에게 그리고 나에게는 납득의 순간이 없었을 것이다. 태영은 언니를 보고 가족의 희생양이라고 했다. 가족의 고역을 뒤집어 쓴. 태영은 그 곳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대학 과제의 덕이라고 했다. 아픈 기억을 끄집어내보세요, 어린 시절 기억에 남는 사건을 적어보세요, 엠비티아이가 바뀌었네요 왜 그랬을까요, 의 연속. 왜의 연속. 그러다 어느 순간 아 그래서 그랬겠다, 그게 최선이었겠다. 더 나을 수는 없었겠다 하는 납득의 순간이 왔다고 했다. 그 납득이라는건 나 스스로 해야하는 거지 누가 도와줄수도 누군가의 말에 의해 이루어질 수도 없다. 납득을 위해서는
액션 플랜이 있어야 한다. 김태영의 교수님이 강의가 끝날 때마다 했던 말은 ‘액션 플랜 짜오세요!’ 였다고 했다. 현재를 살으세요. 과거에 목메지 말고 현재를 사세요. 과거는 이미 벌어진 일, 어쩔건데? 오늘 저녁 그리고 내일 뭐 할지 생각해 와, 하는게 과제였다고. 나는 2020년애도 2021년에도 22년에도 23년에도 그리고 지금도 ‘나는 과거에 살고 있다’ 한다. 그리고 ‘과거에는 그만 살아야지’ 한다. 그걸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나의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아는 것. 이제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되는 것. 그것 또한 하나의 성취라고 했다. 이제는 액션 플랜을 짜야지. 내일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내 방어기제 검사 결과를 보더니) 넌 어쩌면 너 생각보다 더 단단한 사람일지도 몰라 저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