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어딘가로 떠나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이들, 일상에 없는 자극과 새로움을 찾아 공항으로 향하는 이들이 불행한 이유가 있다면, 아마도 목적으로서의 여행과 출구로서의 여행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전자는 무언가를 좇아서 떠나지만, 후사는 무언가에 쫓겨서 떠난다. 누군가는 행복해지기 위해 떠나는 반면, 또 다른 누군가는 그저 불행을 견딜 수 없어서 떠난다.
마음은 자꾸 지구 반대편을 떠올렸지만, 그곳에선 돌아오는 방법마저 잊게 될 것 같았다.
학교에 남아있는 것 빼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된 기분이 들었다.
누구한테도 말할수 없는 바에는 누운 채 가만히 구석에 놓인 책상을 보았다. 외국어로 된 책들 끝에, 캐리어에 딱 하나 골라 실어 온 시집이 잿빛으로 꽂혀 있었다. 그 아래엔 “그레이 구스” 보드카 한 병이 있었다. 무언가 참을 수 없을 때면 시집을 꺼내 아무 데나 펴 한 두 편 읽었다. 정제된 모국어가 익숙한 손길로 입가를 훑다 찬찬히 스며들었다.
세상의 나머지와 내가 서로를 온전히 번역할 수 없고 또 서로에게 온전히 번역될 수 없다는 걸 그 때보다 잘 안다.
홀로 슬퍼지는 일보다 억지로 사랑하는 일이 훨씬 두렵다.
다음을 상상하는 데 마음을 쓰지 않아도 됐으므로, 내가 아는 가장 완벽한 사이는 ‘아무 사이도 아닌 사이’였다.
어떤 때는 내가 타고난 기질이나 특성, 환경을 다 갖다 버리고 싶었고, 어떤 때엔 관계에서의 쓸데없는 인내심과 부족한 사회성도 탈탈 털어버리고 싶었다. 요컨대 나는 나를 갖다 버리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