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간은 분류하기를 좋아한다. MBTI가 성행이지만 MBTI 이전에는 별자리가 있었고, 띠 궁합이 있었고 혈액형이 있었다. 지구엔 70억의 인간이 살고있으니 70억개의 성격이 있을텐데 우리는 그 성격을 열 여섯가지로, 열 두가지로, 네 가지로 분류하고자 했다.
누군가는 지구 위의 생물종을 분류하기 위해 일생을 바치기도 했다. 인간은 가장 우월하며 그 아래엔 인간과 비슷한 영장류가 있고, 피라미드의 아래로 내려갈수록 그 생물종은 인간과는 상이하며 그렇기에 하등하다. 그 어디쯤에는 어류가 존재했는데 그들은 공기 중에서 살 수 없다는 점에서 인간과 상이했고 비늘이 있고 외형이 긴 타원형이라는 점에서 인간과는 달랐다. 데이비드 스타 존스는 평생을 어류를 연구하고 표본을 채취하고 그들의 이름을 붙이는데 바쳤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밝혀진 바에 따르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지만.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오만함에 대해 생각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인간은 우리가 생태계의 가장 우등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아마 인간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다고 여겨지는 생각하는 힘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또한 인간은 살생 무기를 가지고 있고 마음만 먹으면 문명 전체를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가지고 있으니 그런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다.
룰루 밀러의 아버지는 끊임없이 인간은 사소하다고 말한다. 지구에서는, 즉 자연이라는 범주에서 보았을 때 인간은 개미나 나무늘보와 다를 게 없다는 의미이다. 누구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타인을 대할 때에는 그 또한 “중요하지 않기는 매한가지지만, 그들에게는 그들이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며 살아가라”는 것이 그의 가르침이었다. 룰루 밀러는 후에 애나와 메리와 만나 대화를 나누며 아버지의 이 말에 반박한다. 미대륙에 우생학의 인간은 사소하며 그 보잘것 없음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각 개인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타인과의 관계맺음을 통해 촘촘한 그물망을 만들어내고, 애니와 밀러가 그랬듯 누군가는 그 그물망 덕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삶으로 복귀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그래, 인간은 사소하고도 중요하다. 사는 동안 우리는 그 중간 어딘가에서 적당한 균형점을 발견하고 그 주변을 유영해야한다.
2.
책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헤더라는 인물이 있다. 룰루를 자신의 집의 머물게 해준 그의 가장 친한 친구. 우습게도 나는 책의 말미 ‘감사의 말’을 읽으며 눈물을 쏟아냈는데 작가가 헤더의 이름을 언급하며 감사의 인사를 전할 때 특히나 그랬다. 작가의 우정이 부러웠고 당연히 김윤서 생각이 많이 났다. 나에게 김윤서는, 김윤서에게 나는 그런 존재일까. 내가 어이없는 실수를 저질러 살 곳을 잃었을 때 윤서는 과연 색안경을 쓰지 않고 나를 그의 집에 들일 수 있을까. 잘 곳을 마련하고 밥도 먹이고 신세한탄도 들어주고 나의 끊임 없는 철학적 질문에 함께 고민해줄 수 있을까.
작가는 친구 스탠지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
‘우리는 관념과 단어의 분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자신이 쓴 단어들이 다른 사람 앞에서 제대로 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철퍼덕 떨어져 내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말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생각들을 머릿속에 품고 있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일인지를. 그리고 자신을 이해해주는 것처럼 보이는 소수의 사람들이 지닌 위험한 힘에 대해서도.’
나의 헤더가 김윤서라면 나의 스탠지는 누구일까. 작가가 가진 우정, 그리고 나의 우정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의심하지 않을 수 있는 우정은 얼마나 귀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