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아웃에서 처럼, 내 마음에서 떠나간 것들은 구슬산을 만든다. 아무래도 기쁨이와 슬픔이가 손 잡고 산넘고 물 건너 가야하는 마음속 황무지 위에… 얼마전 2024년이 신상 구슬로 또르르 굴러 들어왔을 것이다. 아무래도 24년은 사기같았다. 있었는데 없었습니다 – 마치 비버가 손에 넣은 솜사탕처럼 – 있었으나 그 증거가 없다. 그러니 2024년의 구슬은 찬 듯 빈 듯 투명한 뭔가가 반만 들어있는 그런 형상이겠다.
이 구슬들은 어디로 가는가.
김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죽으면 구슬 무덤으로 가요.” – 나는 그가 구슬산을 구슬 무덤이라고 한 것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구슬이라는게 가스를 내뿜는데 그게 결국엔 전부 환경에 독이 되는 거거든요. 그렇잖아요, 사람 마음에서 떠나간 건데 좋은 가스가 나올리가 없죠. 그래서 구슬들 처리는 결국 죽어서 본인이 해야되는거에요. 그게 신이 정한 이치예요.”
“선생님, 그 처리라는 것이 정확히 어떤 걸 말하는건가요?”
“불에 태워야돼요. 구슬을 불에 태우면 그 막이 서서히 벗겨지면서 유해가스가 서서히 나오거든요. 그걸 다 마셔야돼요. 이승에서 그것들을 품지 못하고 떠나보낸 죄! 그걸 미리 속죄하지 못했으니 결국 죽어서 벌을 받는 것이지요. 그러니 전형님, 죽어서도 고생하기 싫으시면 우리 교회에 나와서…”
김선생은 이승과 저승을 구별하지 못하는 말을 하다가 결국 대화의 마무리를 전도로 하고 말았다. 김선생이 정말 선생인지 남들도 다 선생이라 불러서 선생인건지는 모를 일이었다.
티비에서는 미국의 유명 환경학자이지 지질학자인 P교수가 이런 발표를 했다.
“바닷속에서 스무개가 넘는 구슬이 발견되었습니다. 구슬 하나는 리프테일 게코의 알 정도 크기이고 투명하며 약간의 색을 띠는 구슬들도 있었습니다. 무게는 다양했으나 대체로 무거웠습니다. 우리 연구 팀은 그 구슬이 한 사람의 몸에서 나온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스무개가 전부일거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 조사를 해 보아야 알겠지만 현재도 비슷한 모양의 구슬이 계속하여 발견되고 있고 바닥에 가라앉은 더 무거운 구슬들도 있을거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티비에서는 분홍빛, 파란빛, 초록빛을 띄는 작은 구슬들이 하나씩 플라스틱 병에 담겨있었고 흰 가운을 입은 한 과학자는 그 구슬을 현미경 아래에 놓고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앞에 펼쳐진 것이 단순한 크리스탈 결정일지 어떤 인간의 생의 한 조각일지. P교수 연구팀은 아직 아무것도 밝히지 않았다.
“이 구슬들이 모든 죽은 인간들에게서 발견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김선생이 옆에서 말했다.
“저 놈들 저거 다 거짓말이야. 구슬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거고 죽어서나 볼 수 있는거라고.”
김선생이 죽으면 구슬이 나올지 나오지 않을지 궁금해졌다. 어쩌면 그의 말이 반쯤은 맞을지도 몰랐다. 그는 어쩌면 죽어서 어떤 바다 생물로 다시 태어나 자기 몸에서 나온 구슬만을 먹고 살아야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구슬을 다 먹어치웠을 땐… 그가 사랑하는 신의 품으로 돌아가는 수 밖에.
나는 집에 와 2024년의 구슬을 들고 요리조리 들여다보았다. 갓 만들어져 아직도 얼음같이 찬 구슬이었다. 얼마나 찬지 김이 펄펄 났다. 역시 내가 예상한대로 맑은 빛의 투명한 구슬이었고 그 안엔 같은 빛의 투명한 유체가 중력에 반하여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 구슬은 전에 한 번밖에는 본 적이 없었다. 2018년의 구슬이었다. 대부분의 구슬은 속에 탄석같은 비정형의 검은 결정이 여러개 있었다. 마음에서 빠르게 떠날 수록 그 결정의 수가 적었고 한 동안 묵혀두다 겨우 마음을 떠난 것에 대한 구슬은 투명함을 거의 찾아볼 수 없도록 결정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빛에 비추었을 때 더 아름다웠던 건 그 검은 결정들 사이사이로 비쳐 새나오는 구슬의 투명한 부분이었다. 구슬을 이리저리 돌리면 빛이 투과해 나오는 모습이 달라 신비로웠다. 그러나 어떤 구슬의 아름다움도 2018년 구슬의 그것에 비할 수 없었다. 투명한 구슬 안에 파도같이 파란 빛의 유체가 아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아래에서 위로 솟아나기도, 떨어지다 나선형으로 엎어지기도 했고 그 파란 유체에 해가 닿으면 방 안 가득 새파란 빛이 번졌다. 마치, 파도 속에 있는 것 같았다.
2018년 나는 파도 속에서 친구를 잃었다.
2024년의 구슬은 아직 차 해 아래 두지 못했다. 처음 구슬을 받았던 2009년, 아무것도 모른 채 구슬을 창틀에 두었다가 학교에서 돌아와보니 그 구슬이 두동강 나있던 경험이 있다. 갓 만들어진 구슬은 아주 조심히 다루어야 한다. 너무나도 투명해서 안경을 쓰지 않으면 찾지도 못할 그 구슬이 시간이 지나 조금 단단해지면 꼭 빛에 비추어보아야지. 그 빛이 어떤 모습으로 집 안을 가득 채울지 아직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