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이야기를 하는가보다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 더 중요했다. 서로 이야기하고 싶어한다는 것, 지금 느끼는 마음을 나누고 싶어한다는 것을 우리 둘 다 알았기 때문에, 마음이 좋았다.
자신의 삶이, 그 안에서 한 선택들이 왜 그런것이었는지 돌이켜 생각해본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은 그래보지 않은 사람의 ‘자기 얘기’왜 전혀 다른 것이었다.
나는 글을 쓰지 않은 사람들이 쓰려고 했던 글에 대해서, 쓰려고 했던 글을 왜 쓰지 못했는지 어디서 막혔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 없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재미있었다. 거기서 그의 개성이 드러나는 것 같았다.
자기 자신으로 존재할 때 충분한 인정과 사랑, 관심을 받을 수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 자유로운 자기 발견의 가능성은 극도로 줄어든다. 한국에서 여자들은 곧잘 그런 상황에 처하고, 여기서 많은 괴로움과 모순이 생겨난다.
읽는 사람들은 있을 데가 필요한 것일까? 책에서 대단히 좋은 것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발견하러 다닐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유롭기도 했다. 헤맬 세계가 있다는 것 자체가. 하지만 역시 읽는 게 좋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성애를 하나의 제도로 검토하지 못하는 것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나 인종차별주의라는 카스트 제도가 물리적인 폭력과 거짓 의식을 포함한 다양한 힘으로 유지 존속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때 성애는 육체의 한 부분에만 국한되지 않고, 확산하는 에너지일뿐만 아니라, 오드리 로드의 말처럼 ‘육체적이거나 감정적이거나 정신적인 기쁨을 공유할’ 때와 일을 공유할 때 도처에 존재하는 에너지이고 (…)
여자와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당연히 어렵다. 그것이 자신에 관한 질문을 마주하게 하기 때문이다. 다른 여자를 어떻게 대하는지는 자기 자신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말해준다. 궁금해하는지 어색해하는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여기는지, 판단하는지 활용하는지, 변화를 지켜보는지, 기대 따윈 없는지, 믿을 만하다고 생각하는지 믿어보기엔 너무나 약하다고 생각하는지… 직면은 어려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