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내미는 손, 그런 것에 나는 너무 약했다. 이유도 묻지 않고 그럴게, 하는 나에게 해든은 이유도 붙이지 않고 카메라를 건넸다.
이상하지. 선배가 서운해야 할 상황 같은 내가 더 서운해. 나는 왜 언제나 서운해할까. 내가 내린 결정에도. 남이 내린 결정에도. 헤어짐은 서운한 건가봐.
과거에 사로잡혀 아직 축축한 사람들의 이야기. 또 거기에 내내 취해 있는 사람들이 자기 연민, 자기 변명, 자기 서사. 그런 걸 싫다고 한 거겠지. 그쯤은 뉘앙스로 맥락으로 알 수 있었다. 우리는 그런 것쯤은 충분히 공유하고 공감하는 사이였으니까.
가르치는 사람에게 예쁨을 받고 싶어하는 학생의 눈이었다. 그건 내게 너무 익숙한 것이어서 그 애가 좋았다.
그래서 재능은 항상 사후적일거야. 되고 나야 그런 저런 재능이 있었군, 하고 평가할 수 있거든.
엄마는 언제 이렇게 달라진걸까. 내가 알던 엄마는 언제까지의 엄마인 걸까. 그리고 나는 평생에 걸쳐, 나와 가까운 사람들을 몇 명이나 오해하며 살아갈까.
여행자는 아무래도 중력의 영향을 덜 받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