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하지 않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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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내가 정말 그리워했던건 방이 한 김 가득 더워져도 참을 수 있는 오후의 햇살이나 갓 떠오르는 해에서 비추는 노란 빛을 받은 맞은편 건물을 바라보며 눈을 뜨는 것, 점심시간에 같이 마차를 마시러 갈 수 있는 좋은 친구 그리고 의도를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누군가. 그러니까 어떤 안정감, 즉 돌아갈 곳이 있다는 안도같은것이었는지도 모른다. 평생을 좇아왔던게 그런 안정감이었는지도 모르지.

돌아갈 곳이 없었다 어려서는. 음악을 하겠다고 집을 나갔던게 아마 만으로 열 살이었나. 피아노 선생님이 전형이를 당신과 함께 독일에 유학을 보내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던 날 엄마는 나에게 묻지도 않고 우리 애는 피아노 시킬 생각 없어요, 했다. 그 어린 애가 꼭 음악을 하고 싶다고 사흘 밤을 들어오지 않아도 눈꺼풀 한 올조차 꿈쩍하지 않았던 엄마 앞에서 결국 피아노를 그만둬야 했고 그 때만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막 난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포기해야했던 수많은 나의 꿈들 그리고 미용을 하고싶다는 동생은 전폭 지지해준 그 이중성.

만 열 한 살 반포상가의 한 휴대폰 대리점에서 엄마는 나에게 최신 휴대폰을 사주었고 그 의도를 파악하기도 전에 나는 그저 신나서 이리저리 휴대폰을 만지다가 그 옆 배스킨 라빈스의 야외 의자에 앉아 엄마에게 부모의 이혼 통보를 받았다. 그래서 이걸 사준거구나, 그러니까 이건 결국 뇌물인거구나. 그리고 서럽게 울었다. 아이스크림이 녹는 줄도 모르고 엉엉. 기억이 존재하는 아주 어려서부터 서로에게 고함을 지르던 부모와 그 옆에서 울던 동생과 어쩔줄 모르던 나. 나마저도 울면 상황이 더 나빠질까 울지도 못하고 벽 뒤에 숨어있었던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가끔 서귀포 할머니가 우리 집에 왔었고 아이고 홍서방 하는 마당에도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했다. 그래서 우리 엄마 아빠가 이혼을 했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다. 나는 차라리 이혼을 바랐다. 아주 어릴 때 내가 아주 어려 기억조차 하지 못할 때 차라리 이혼을 했더라면.

그리고 내가 열 아홉이 될 때까지 이어졌던 싸움. 그리고 내 성적에 대한 엄마의 집착. 엄마가 나에게 던졌던 많은 물건들, 가령 휴지곽이나 맥주병, 골프채 같은 것들, 그리고 그보다 더 아팠던 따가운 말들. 모든게 내 탓이었다. 엄마의 결혼 생활도, “더 이상 참아줄 수 없는” 나의 성격도, 내가 “이 모양 이 꼴” 인 것도. 가부장제의 굴 속에서 엄마는 어쩌면 그냥 모든 걸 풀어내야할 곳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냥 내가 거기 있었을 뿐.

그리고 이 그림에 아빠는 없다. 엄마와 싸우고 난 뒤면 아빠는 방에 들어가 주섬주섬 담배를 챙기고 큰 한숨을 내쉬며 대문을 나섰고 그러면 엄마는 냉장고를 열어 소주를 한 병 까든지 했다.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가 난 후면 아주 못되게도 아빠가 돌아오지 않기를, 적어도 엄마가 잠이 들기 전까지는 돌아오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면 그 다음날 아침까지는 고요했고 해가 떠오르면 학교에 갈 수 있었으니까. 도망칠 곳이 있었으니까. 그러나 아빠는 어김없이 돌아왔고 그렇게 2차전, 3차전. 둘이 싸우는 소리를 들으며 공부를 하다가 잠에 들곤했다. 아빠는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면 내 방에 들어와 잠이 든 줄 아는 내 옆에 앉아 울며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그 중 한 번도 잠에 들어있었던 적은 없지만 늘 자는 척을 했다. 부모가 아닌 사람의 얼굴을 한 아빠의 모습이 무서워 같이 울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학교가, 그러니까 친구와 선생님들이 나의 전부가 됐다. 새로 만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도 나서부터 내 옆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안정감을 찾을 수 없어서였는지도 모른다. 가족 밖에서 나의 가족을 꾸려야 했고 그렇게 꾸린 가족이 자신만의 새로운 가족을 만들었을 땐 행복하면서도 무서웠다. 모두가 떠나면 내 옆엔 누가 남지?

벽을 쌓기를 택했다. 나는 뭐든 혼자 하는게 좋더라, 하는 식으로 쌓아올린 벽의 틈 사이로 밖을 바라보면 모두가 무리를 지어 행복해보였다. 그러면 그 틈을 메꾸고 더 견고한 벽을 만들었다. 그렇게 높이 쌓인 벽으로는 해도 거의 들어오지 않고 고독인지 외로움인지 구별할 수 없는 그 우물 속에서 오래도록 살았다. 누구보다도 홀로 서기를 잘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사람을 그리워했다. 나를 구한 건 절반이 책이고 절반이 친구들이다. 우물 밖에서는 친구들이 손을 뻗어주었고 우물 안에서는 책을 쌓아올려 그 곳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다.

이 얘기를 꺼낼 수 있는건 어쩜 회복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친구들 – 열 다섯번의 사계절을 함께 보내온 친구나 도망치는 나를 붙잡고 싱글싱글 웃으며 가지 말라고 하던 친구들 – 그리고 어떤 연인들.

그러니 내가 무서워 한다면 나의 옷깃을 잡아 끌어 잔잔한 당신의 바다에 풀어주세요. 파도가 쳐도 그 안에서 잠길 수 있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