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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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27일 ~ 2024년 4월 16일

날짜를 쓰고 보니 오늘이 세월호 10주기구나. 해 들어오는 교실에 앉아 국어 시간에 은양쌤이 수업을 하다 말고 크게 소리내어 울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도록 하고,

바이크 쇼츠에 반팔 티셔츠를 입고 등에는 헬멧을 건 배낭을 메고 코스 매장에 들어섰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손님과 직원으로 자주 만나던 야오와는 서서 20분정도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 옆에서 소피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손님인 나와 대화를 나누는 야오를 쳐다보고 있었다. 야오는 곧 매장에서 사람을 뽑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넌지시 전했고, 난 머지 않아 에이치엔엠에 internal transfer 폼을 내고 코스에 지원을 했고, 웃는게 예뻤던 조나단과 화상으로 인터뷰를 하고 며칠 뒤 틸리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그 모든게 정말 빠르게 착 착 착 이루어졌다.

즈쉬엔은 3월 27일 동기로 함께 일을 시작했지만 아직까지도 조금은 어색하고 같이 두 달밖에 되지 않은 본다이 매장에서 전근 온 루와는 yeehaw 하는 소리를 내면서 키득키득 웃는다.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야오, 헬레나, 바피, 소피, 틸리, 잭, 즈쉬엔, 알리샤, 브루나, 시네이드, 윈시, 마수미, 마프티, 브라이언, 로미, 미야, 에코, 앨리, 코트니, 데이비드. 한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떠오르는 얼굴과 추억과 그들이 내게 때때로 드러내었던 그들의 진짜 모습, 애정 어린 눈빛과 따뜻한 손길, 자주 하지는 않아도 마음 깊었던 포옹. 장난기가 많던 야오의 놀랍게도 성숙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면모라든지, 겉으로는 아주 친해보이면서도 자기 진짜 속은 절대 내어주지 않는 마수미, 웃기지만 부적절한 농담을 하면 웃고는 조용히 자리를 떠버리는 마프티, 마네킹을 들고 도망치는 흉내를 내면서도 누구보다 내 지친 마음을 쉽게 널어놓을 수 있는 볕이 되어준 브라이언. 헬레나와 이야기를 나눌 때면 마치 선주 이모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아 눈물이 났고 헬레나와 포옹을 하면 엄마에게 안기는 것 같았다. 윈시의 솔직함엔 마음이 아프기도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했고 그녀가 남들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든 적어도 내게 그녀는 믿을만한 인간이었다.

나는 인간이 싫지만 인간이 너무 좋기도 해서 내가 고양이인지 개인지도 모른 채로 사람에게 달려들었다가 상처를 받기도 그들의 마음에 스크래치를 내기도 하고, 그럼에도 어떤 이야기를 하며 눈을 빛내거나 눈물로 어렴풋이 빛나는 그들의 눈동자를 보고 있으면 또 한없이 그들에게 빠져버리기도 한다. 그들의 좋은 점만 보고 마구 달려들었다가 뾰족한 말에 잠깐 물러났다가도 조심히 눈치를 보며 그들에게 다시 다가가는 형국이다. 그리고 또 다음 인간, 또 다음 인간, 또 다음 인간. 나는 기본적으로 모든 인간은 선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 팀 맞은 편에는 손님들이 있었다. 아, 아무래도 리테일에서 일하는 가장 큰 매력은 손님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지. 손님들은 직원들보다 훨씬 예측 불가능해서 처음에는 그들을 파악하는 것부터 배웠고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할 지를 알게된 지금 나는 매장을 떠나게 되었다. 많은 손님들 중 내가 많이 사랑했던 사람들은 – 동그란 해리포터 안경을 쓴 금발의 이솝 직원 언니, 네모난 안경을 쓴 흰 머리가 자연스러운 할머니(이 분은 매번 오면 나를 찾으시고 내가 추천한 옷을 몇 벌 구매하시고는 내 다음 스케줄을 물어보시고 내 스케줄에 맞춰서 매장에 오셨다), 시티 우체국에서 일하는 키가 크고 빼빼 마른 베레모를 쓰고 다니는 남자 직원, 야오의 친구 그레이스(그녀는 웃는 모습이 정말 통통하고 귀엽다), 내게 미용실 정보를 물어보셨던 금발의 아주머니.

사람들이 거울 앞에서 자신감을 가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신을 신으면 저절로 어깨가 귀 뒤로 넘어가고 손은 자연스럽게 주머니로 들어가고 눈동자는 이리 저리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쳐다본다. 그러면 나는 옆에서 옷을 팔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거울 속 그들의 모습이 그리고 그 거울 맞은 편에 서 있는 사람이 너무 아름다워서 웃음이 났다. 피팅룸에 있는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갈색 자켓 안에는 크림색 내의를 입으면 잘 어울린다는 말을 해 주었고 카키색 치노는 흰 셔츠와 잘 어울린다는 말을 해주었고, 사이즈를 고민하는 남자 손님에게는 미디엄은 가슴 부분이 조금 끼어 보이지만 라지는 어깨가 너무 커 보인다는 말을 해주었다. 진심으로 질문을 하는 손님들에게는 진심으로 대답을 해 주었고 옷을 열 벌이고 스무 벌이고 가져다주곤 했다. 그러면서 나는 ‘아 인간은 정말 귀엽다!’ 생각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여자든 남자든 그 사이의 어딘가에 있든 예뻐보이고 싶은 마음은 다 같구나, 인간은 정말 귀엽다.

야오가 송별 편지에 쓴 건 단 한 문장이었다. 그 한 문장에 그녀는 나에게 나는 너를 믿으며, 너에 대해 확신하며, 또 너를 위해 기대한다는 모든 말을 담았다. 어쩜 내가 빈센트에게 원했던 단 하나를 그녀는 나에게 그 한 문장으로 선물했다 – See you soon! 브라이언과 마수미는 젤라또를 먹으며 누가 더 많이 나를 위해 기도할 것인가를 논했다. 브라이언이 아침 저녁으로 두 번 기도를 할거라고 하자 마수미는 거기에 점심 전후를 추가해서 네 번 기도를 할거라고 하고 브라이언은 거기에 잠 자기 전을 추가해서 다섯 번 기도를 할거라고, 마수미는 자다가 일어나서 한 번 더 기도를 할거니 여섯 번, 브라이언은 내 기도는 강력하니 한 번 기도가 두 번 기도의 효과를 낸다고 했고 마수미는 자신의 기도는 세 번 기도의 효과를 낸다고 했다. 그 둘의 장난스런 기도 경쟁에 나는 울고싶기도 웃고싶기도 그러나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좋았다.

귀여운 사람들과 귀여운 사람들을 상대하며 일할 수 있어 좋았다. 사람에 대해 많이 배웠다기보단 한 사람 한 사람을 깊게 알게되어 좋았다. 많이 많이 사랑했던 코스, 안녕.

3월 27일 첫 출근룩
안 닮은 듯 닮은 듯 안 닮은 야오와 나
드레스코드가 바비였던가, 전직원이 핑크 착장했다 – 헬레나와 나
마수미와 점심을 같이 먹는 날이면 그저 좋았다
to believe you’ll be moving on is exci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