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랑 내가 창문 하나를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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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는 왜 그렇게 청소를 열심히 시켰는지는 몰라도 청소시간이 기다려지는건 정말 너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하루였던가, 마지막 교시의 종이 땡그르르 하고 울리면 학생들은 각자 흩어져 맡은 구역을 청소했다. 그 달 나는 복도쪽 창문을 닦았는데 아침에 읽은 신문의 한 장을 부욱 하고 찢어 엉성하게 뭉쳐 공을 만들고 창문에 윈덱스를 칙칙 뿌려 신문지로 닦으면 되는 간단한 역할이었다. 앞 뒤 네개씩 여덟 장의 창문을 재빠르게 닦고 재빨리 복도의 코너를 돌아 기둥에 숨어 너네 반을 쳐다보면 너는 교실 안에서 열심히 창을 닦고 있었다. 열린 창 앞으로 빠르게 다가가 야 안녕! 인사를 하곤 얼른 우리 반으로 뛰어 돌아오면 너는 한 손엔 신문 뭉치, 한 손엔 윈덱스를 들고 싱글생글한 얼굴로 우리 반까지 걸어왔다. 그럼 우린 그 길로 복도 끝까지 걸어가 계단을 반 층내려가 교실과 교실 그 중간의 미지의 공간으로 도망쳤다. 나는 벽에 붙어 너는 계단의 끝에 앉아 가운데의 그 일 미터가 조금 넘는 공간을 사이에 두고 우린 무슨 눈빛들을 나눴을까.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선생님들이 교무실에서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면 우리는 싱긋 웃곤 엉덩이를 툴 툴 털고 일어나 각자의 반으로 돌아갔다.

복도 유리창을 닦는게 좋았던 건 빨리 너를 보러 갈 수 있어서였고 복도 걸레질을 하는 게 좋았던 것도 너네 반을 몰래 훔쳐볼 수 있어서였다. 제일 싫은건 운동장 쪽 창문을 닦는 거였는데 창문이 많고 또 위로도 긴 탓에 도무지 빨리 끝낼 수도, 그래서 너를 보러 갈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다음 년도에 우린 같은 반이 되었다. 너는 내 앞자리에 앉을 때면 손을 뒤로 뻗어 내가 너의 손을 잡게 했는데 내 짝은 그 때 우리를 봤을까. 지영쌤은 아마 봤을 것이다. 하루는 청소가 끝나고 나한테 물으셨다 – 너랑 무슨 사이냐고. 그 때 내가 뭐라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가 언제 내 인생에서 사라졌는지, 갑자기 왜 사라지게 된건지 기억이 안나. 나는 왜인지 지금도 지하 상가를 걸을 때면 너를 마주치지 않을까 생각해. 4차 아파트를 지나칠 때도. 나는 아직도 너의 생일을 기억해, 4월 8일. 어디서 뭘 하고 있니. 기타는 아직도 치고 있니. 나는 아직도 피아노를 치고 플룻을 분단다. 오케스트라 공연 날 플룻이 고장나 발을 동동 구르던 나한테 집가지 뛰어가 니 플룻을 가져다 준 니 모습이 아직도 생각나.

티비는 사랑을 싣고 같은 프로가 아직도 존재한다면 나가보기라도 할 텐데 이젠 그저 어디에선가 잘 살고 있겠지 하는 수 밖에는 없어. 사실 널 찾으려면 찾을 수도 있겠지, 나는 검색왕이니까. 그러나 그러지 않는 것도, 여태껏 한 번도 그런 적 없었던 것도 다 이유가 있는 거라 믿어. 그러니까 어디에 있든, 어디에도 없든 잘 지내, 행복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