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니스로 가는 여섯 시간 기차여행 내내 토마티토와 미셸 카밀로의 Spain Again 앨범을 들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들은 건 El dia que me quieras. 다음 곡으로 넘어가면 잠에 들었다가도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 돌아왔고 그렇게 몇 시간을 하다가 결국엔 반복재생을 택했다. 지금도 이 곡을 들으면 하얗고 텁텁한 공기에 갇힌 기차 안으로 돌아간다. 창밖으론 같은 풍경이 끊임없이 지나가고 들과 산, 양과 말, 건초더미들, 마시멜로우처럼 생긴 지푸라기 더미. 남으로 남으로 직진하던 기차는 액상프로방스 지역을 지나 동쪽으로 방향을 틀고 펼쳐졌던 잔잔한 바다. 바다를 몇 시간이고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니스에서는 거리마다 무화과 냄새가 났다.
아이유의 팔레트 앨범을 들으면 2017년 교환학생을 왔던 첫 날로 돌아간다. 기숙사에는 아무도 없었고 적막이 무서워 평소에는 듣지도 않던 아이유의 노래를 틀어놓고 짐을 풀어댔다. 같은 노래를 몇 시간이고 듣는 것이 나의 버릇이라면 버릇이고 그러니 어떤 노래에 따라 어떤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지는건 어쩌면 운인지도 불운인지도 모르는 반사적 행동이다.
리타 파예스의 If the moon turns green의 첫 소절, 그러니까 리타가 입을 떼고 엘리자베스 로마가 첫 기타 스트로크를 내려치는 그 순간 나는 시드니의 기차 안으로 돌아간다. 윗칸도 아랫칸도 아닌 그 중간에 나는 서서 노란색 기둥을 잡고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 창 밖은 해가 좋은 센트럴 역, 기차는 달려 터널 속으로 들어가고 창 밖은 어두워져 그 속으로 내 얼굴이 비친다. 달이 초록빛으로 변해도 강이 거꾸로 흘러가도 너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니 그 아무것도 놀랍지 않다는 그 가사를 왜 자꾸 곱씹었을까. 이 노래는 시드니에서 잃어버렸다. 더 이상 되찾을 수 없고 아주 운이 좋다면 몇 년 뒤에는 다시 들을 수 있겠지. 좋은 노래였으니 이대로 잃어버리는 건 마음이 아프다.
리타의 El Marabino도 더 이상은 듣지 못한다. 리타, 리타, 리타. 좋은 노래를 만든 그녀를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다만 노래 속에 잠겨버린 나를 탓해야 한다. 죽어도 노래 속에 잠겨 죽는다면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