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9일, 그리고 책은 아니고 영화.
수영을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운동을 꼽으라하면 수영이라 할 것이다.
2019년이 되기 며칠 전, 내년부터는 수영을 배우러 다녀야지 하는 마음으로 동네 수영 센터에 등록했다. 시에서 운영하는 여성 전용 센터에 딸린 수영장이었다.
화목 11시 수업. 여느 신규 회원들이 그렇듯 어정쩡하게 체조를 마치고 여섯 레인 중 가장 오른쪽의 초급자 레인에 발을 담궜다. 수영장 벽을 잡고 발차는 법을 배웠다. 킥판을 잡고 25미터 레인을 발차기로만 꼼짝없이 돌았다. 발차기가 잘 된다 싶으면 팔 돌리는 연습을 했고 팔이 잘 돌아가면 팔과 다리를 같이 움직였다. 어려서 수영을 배운 적이 있던 나는 곧잘 진도를 빼 나갔다. 나와 같이 수업을 듣기 시작한 눈꼬리가 내려가고 얼굴이 네모난 이모와 찢어진 눈에 승부욕이 그득한 이모는 팔다리 호응을 맞추는데 시간이 조금 들었다. 내가 킥판 없이 팔을 세모로 만들어 자유형을 할 때 이모들은 파란 킥판 끝을 가지런히 잡고 크게 팔을 돌려 수영을 했다. 나는 항상 선두였다. 이모들이 한 바퀴를 돌 때 나는 한 바퀴 반을 돌았고, 그들이 한 바퀴 반을 돌 때 나는 세 바퀴를 돌았다. 레인의 모서리에 서서 수경을 이마에 쓰고 헥헥거리는 이모 앞으로 유연하게 물에 몸을 실어오면 이모는 손짓으로 먼저 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숨이 차도 그 손짓만 보면 어떤 오기에서였는지 쉬지 않고 레인을 돌았다. 내 폐활량을 늘려준 건 이모들이 팔할이다.
이모들은 나를 두고 고등어라고 불렀다. 수영복도 수영모도 희거나 푸른 건 없었지만 그렇게 불렀다. 숨도 쉬지 않고 빠르고 힘있게 수영을 해서 그렇다고 했다. 고등어가 힘차게 수영하는 물고기였던가? 밥상머리에서밖에는 그들을 본 적이 없어 모르겠지만 나는 그 별명을 애정했고 그보다도 더 이모들을 좋아했다. 수업이 끝나고 5분 정도가 남으면 이모들은 내게 자세를 봐달라고 했다. 그들보다 아주 조금 나은 실력이지만 숨을 참고 물에 들어가 그들이 수영하는 모습을 관찰했다. 뻣뻣한 접영 웨이브의 어색한 몸짓이 물보라를 일으키는게 좋았다. ‘내 자세 어때?’ 하고 묻기보다는 ‘내 수영 별로지’, 하며 혼날 채비를 하는 그들에게 나는 ‘아뇨, 잘하시는데!’ 라는 문장으로 말을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못한 그들에게 나는 관대해질 필요가 있었다. 내가 유튜브를 보며 얻은 팁과 나만의 비법같은 걸 알려주면 이모들은 바로바로 수영에 적용해보고는 고마워했다. 아침잠이 많아 수업을 빠진 날에도 이모들은 수영을 했고 내가 나오는 날에도 늘 먼저 와서 스트레칭을 했다. 완경을 했어도 만 65세가 되지 않아 얼떨결에 받은 생리 쿠폰을 매달 빠지지 않고 사용했다.
그리고 우리의 옆 레인과 옆옆 레인에는 무시무시한 이모들이 있었다. 노랗고 빨간 수모를 맞춰 쓰고 일열종대로 각을 맞춰 수영하는 연수반 이모들과 마스터반 이모들. 킥판을 잡고 발을 종종대며 레인을 돌고 있으면 돌고래떼마냥 물을 몰면서 그들은 레인 위를 질주했다. 그 강한 발차기와 첨벙거리는 손동작에 속절없이 물을 먹고 말았다. 마스터반 이모들 중 내 또래는 없었다. 우리 엄마 정도의 나이, 어쩌면 그보다 더 나이가 많은 이모들이었다. 동네에 운동 잘하는 언니들은 다 여기 있는 것 같았다. 암, 남자들이 컥컥대며 역기를 쿵 하고 내던지는 헬스장은 아무래도 조금 원시적이지. 수영이 늘 멋있는 운동이라고 생각했지만 중년과 노년의 여성들이 젊은이들보다 잘 할 수도 있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더욱 멋졌다.
몸 쓰기를 좋아해 이런 저런 운동을 배우러 다녔다. 헬스, 수영, 요가, 필라테스, 바디웨이트, 케틀벨, 크로스핏까지. 인스타그램에 나올 법한 멋진 몸을 가진 건 보통 젊은 사람들이었지만 꾸준한 건 언제나 이모들이었다. 그 나이가 되면 꾸준함에 대한 호르몬이 나오는걸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게 될 정도로 그랬다. 헬스장에는 매일 7.0의 속도로 한 시간씩 러닝머신을 걷는 이모가 있었고 요가원에는 동작은 잘 못해도 6개월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수업에 온 이모가 있었다. 케틀벨을 배우는 체육관에서는 케틀벨이 마치 손의 일부인 양 자연스럽게 클린과 스내치를 하는 이모를 만났다. 월수금 3년을 매일같이 나온 체육관 에이스였다. 아, 이모들의 이 꾸준함이란! 그들 앞에서 나는 아주 당연히 작아진다. 발차기가 빠르고 어려운 동작을 잘해내고 무게를 잘 쳐도 어딘가 어색하다고 느끼는 건 꾸준함이 부족해서일거다. 그리고 이모들의 허허 웃는 얼굴 뒤에 숨겨진 승부욕과 강인함과 버티는 힘은 아무래도 꾸준함에서 나온 것이겠지.
명자에게 승부욕이 없을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주 오만하고 자유 연습 때 그를 끼워주지 않는 것도 아주 치사하다. 자규 학생이 파트너가 되기를 바랄 수는 있지만 그걸 그렇게 대놓고 표현하다니. 대회 나갈 자격도 없다. 아주 스포츠 정신이 떨어진다. 특히 강사라는 사람이 시합 출전권을 두고 양보할 수 없겠느냐고 묻는 꼴이라니. 정말 한심하다. 수영장 사람들 중에서 제일 나은게 중학생인 자규다. ‘양보해주리?’하는 명자의 물음에 도리도리 하며 정정당당하게 경쟁해서 이기겠다고 하는거나, 멀리 있는 명자가 들을 수 있게 남들이 자신에게 해준 조언을 크게 반복해서 말해주는 모습이나. 수영장의 다른 어떤 어른들보다도 자규의 마인드가 가장 멋지다.
명자가 생선을 사러 가서 ‘가장 빠르고 힘센 놈’으로 달라고 한 게 재밌었다. 재빠른 생선을 먹으면 나도 빨리 수영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 그런 미신같은 간절함이 웃음이 나게 좋았다. 현실적인 소리밖에 할 줄 모르는 20대에게는 없는 중년의 순수함이었다. 요리 첫 장면에서 장어에 소스 바르는 모습이 나오길래 ‘역시 장어였군’ 했는데 웬걸. 완성된 식탁에 장어는 열 점 정도 뿐이었다. 상 한가운데 접시를 다섯개는 이어붙였을 법한 크기의 대왕 생선이 턱 하고 올라오기에 푸하하 웃었다. 그래, 명자이모! 그 정도는 먹어줘야 선발전을 이기지!
선발전 장면이 시작되고 이 영화의 제목이 <기대주>라는 걸 다시 한 번 상기하고는 명자가 지겠구나, 했다. 그는 기대주일 뿐 선발되지 못 할 것이었다. 역시나 명자는 자규에게 져버렸다. 간발의 차이로 진 것도 아닌 완패를 해버렸다. ‘어머님도 잘 하셨어요’하는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불필요한 위로에 그는 더욱 쳐져 수영장 밖으로 터덜터덜 걸어나갔다. 그러고도 또 다음 수업에 나왔다. 같은 수영복을 입고 같은 수모를 쓰고.
명자는 앞으로도 꾸준히 수영장에 나올 것이다. 두 레인 건너 자규가 전달하는 조언을 듣고 수영도 더 잘 하게 될 것이다. 언젠간 명자가 마스터 반에 들어가 다른 언니들과 각을 맞춰 수영하는 날이 오길 바란다. 원색의 수모를 맞춰 쓰고 돌고래같이 물을 몰며 레인을 도는 그를 수영장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