것은 어느 정도 정상의 상태에 부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하고자 하는 말이 많이 있다는건 생각을 하고 있다는 뜻이고 삶이 나를 이끄는 것이 아닌 내가 삶을 어느정도는 이끌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치만 나는 여전히 부유한다. 어쩜 나는 어딘가에 정박하지 못하고 떠돌기만을 반복하다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 죽으면 다시는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내게 새로운 기회가 올지도 아닐지도 모르지만.
수요일 오후엔 마수미와 아주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이케아에 갔다가 코스트코에 갔다. 이케아 커피는 죽어도 마시기가 싫어서 차로 멀리 나가 사마신 커피가 그렇게도 맛이 좋아서 행복했다. 둘이 카페를 나서며 커피를 한 입 하고서는 동시에 눈이 동그래져서는 “진짜 맛있다!” 했던게 참 웃겼다. 이케아에서는 소파란 소파엔 다 앉아보고 선반이란 선반은 다 열어보고는 이런 주방에서 요리하면 참 요리할 맛 나겠다 하며 꿈꾸듯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까 이런 주방을 가지려면 구백만원이 필요하단거지, 그렇지, 일주일에 5만원씩 50개월만 내면 돼, 그렇지, 하는 말도 안되게 웃기는 대화. 코스트코에선 또 어땠냐면 무슨 물건 하나를 카트에 담으려 할 때마다 세상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기 전에도 이걸 정말 사는게 맞을까 또 고민하고 결국엔 두 번을 고심해 담은 물건도 되돌려두었다. 그게 너무 웃겼다. 뭘 해도 너무 웃겼다. 너무 많이 웃어서 재채기도 나왔다. 그렇게 웃으면서도 마음 한 켠에 있는 어둠을 주체하지 못해 마냥 행복하지가 못했다. 그게 너무 억울했다.
어쩜 나의 정상의 범주는 다른 사람의 우울과 가까운가. 그건 내가 평생을 스스로에게 물어야할 질문이겠지. 인스타에서 본 63세 할머니가 그랬다. 20대 때에는 독립심을 길렀고 30대에는 커리어를 쌓고 좋은 친구들을 사귀었고 40대가 되니 인생에 품었던 많은 질문들이 해결되었다고 했다. 어쩌면 나이 마흔에는 그 답을 찾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쩜 마흔에는 나의 정상이 남들의 정상과 가까워질지도 모르지. 그러니 오늘도 그냥 살아내야 한다.